문학일기

시대의 스승께 듣는 지혜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5. 2. 26. 15:23

젊은 시절 삶에 영향을 미친 분을 들라면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 교수님을 들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 분은 친구셨다. 쓰신 글이 발표될 때면 누구보다 먼저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회사의 실무 책임자로 있을 때였다. 고객 사은행사에 모셔서 강연을 해주실 분이 필요했다. 김형석 교수님이면 어떨까 싶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기꺼이 와주시겠노라 하셨다. 당시 연세가 칠십이 넘으셨지만 차분한 음성으로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셨다. 행사에 참석했던 고객들은 교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좋은 교훈을 얻었노라고 했다. 

사는데 정신이 팔려 교수님의 근황에 대하여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고국에 계신 스승님께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말씀하시는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셨나 보다. 한번 들어보면 좋겠노라고 추천해 주셨다. 만사 제치고 사이트로 들어가 강연을 들었다. 여전히 변함없으신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96세의 연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차분하고 인자하신 어른 모습이셨다. 물질이나 권력, 명예와는 거리가 먼 학자의 길, 스승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의 당당함과 기품이 엿보였다. 잔꾀 부리지 아니하고 바른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지는 잔잔한 미소가 얼굴 가득 배어있었다.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어버이와 같이 따뜻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조근조근 말씀해 주셨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할 때 삶이 더 의미 있어진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돈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떠나게 되나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나날이 성숙해 간다고도 하셨다.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 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을 말씀해주셨다.

살아보니 그랬다. 돈을 벌겠다고 쫓아다녀 봤지만, 돈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주식을 샀더니 주식값이 떨어졌고 주식을 팔았더니 주식이 올랐다.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에 돈을 넣으면 안전하려니 생각했다가 그나마 반 토막이라도 건지고 빠져나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캐나다에 와서는 적잖은 돈을 주고 가게를 샀다가 한 푼도 못 건지고 손들고 나와야 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뭔가 해보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나중에 보면 몇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자신을 보곤 하였다.

사실이지 나를 위할 때가 아니라 남을 위할 때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어른들과 함께 글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격려해 드릴 때 기쁨이 컸다. 어르신들께서 본인의 삶을 글로 풀어내실 때 자신이 쓴 것 이상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겨울 몇 주간 노숙자를 섬기며 잔잔한 만족을 경험하였다. 함께 봉사하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일을 담당했다. 그 작은 일을 하면서도 만족하였다. 남을 돕고 있다는 자긍심이 겨우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애쓰는 일도 소중한 일이다. 나아가 이웃을 위해 작은 나눔의 손길을 이라도 내밀고 지역사회를 밝게 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 기쁘게 하기에 충분할 터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60세부터 75세 때였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당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안병욱, 김태길 교수-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노학자께서 그저 남 듣기 좋아지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살아보니까 그렇더라는 진지한 삶의 고백으로 들렸다. 사실이 그렇다면  전성기를 지나도 한참 지난 때를 산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전성기를 지난 때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거기에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추구할 때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셨다.  

생각해보면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어르신들은 칠십 줄에 계신다. 그분들처럼 살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와 훈련이 필요하리라. 어떻게 하면 나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졌다고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른 후 인생에 있어 달걀노른자와 같은 시기, 행복했던 시기가 육십 세부터 칠십오 세 사이였다는 고백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늦게라도 이웃을 위하며 살 때 행복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과 사회를 위해 어떤 이바지를 하였느냐에 따라 개인에 대한 후세의 평가도 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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