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 더플린과 베더스트 사이 메이저 맥 선상에 있는 팀 호튼에서 북쪽으로 난 창밖을 바라본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아 놓았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공사를 하지 않고 있다. 눈 쌓인 공간이 보기에 좋다. 길 쪽으로 캐나다 국기가 여럿 달려있고 바람에 살랑거린다. 햇살은 더없이 싱그럽다. 바깥 기온은 영하 십 도에 가깝지만, 햇살 때문인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멕시코 리비에라 마야의 해변과 야자수를 언제 보았나 싶다. 이렇듯 추운 곳에 있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영상 25도의 그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은근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늘 문제이다.
나아지리아의 세 살 난 아이의 사진이 토론토 스타에 실렸다.(2016년 2월18일자) 왠지 남의 아이같이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내가 캐나다에 있기 때문에 이 이이도 돌보아야 할 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게다. 시야가 한반도에만 국한되어있지 않고 지구촌으로 더 넓어졌다. 그것은 내가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올 때 기대했던 바이기도 하다. 저녁에는 인구 450만이며 일인당 GDP가 900불인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이웃의 범위를 넓히는 것,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을 펼치며 사는 건 보람된 일이다. 2016년 2월 18일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멕시코 리비에라 마야에서 보냈던 한 주일을 생각해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맑고 청명한 하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하얀 백사장…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장소였다. 아침저녁 점심은 무료로 제공되고 와인과 음료수를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각테일을 그렇게 많이 마셔본 적도 없었다. 모히토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마시기에 좋았다. 박하 잎과 라임을 넣은 상큼한 맛은 비치에서 더 잘 어울렸다. 대학생들의 리딩 위크가 막 시작된 지라 사람들로 붐볐다. 너무 조용한 것보다 약간은 시끌벅적한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었다.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는 등 전반적인 플래닝은 둘째가 했고 여행 경비는 두 자녀가 분담했다. 우리는 짐만 챙겨 떠나기만 하였다. 어느새 자녀들이 장성하여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 부모를 기쁘게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2016년 2월 17일
영상 25도 안팎의 장소에 있다가 토론토로 돌아오니 영하 22도였다. 체감온도는 더 떨어져 영하 40도였다. 이런 지구촌에 산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비치에서 중년의 남자가 혼자서 여행을 와 각테일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틀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각테일 잔을 들고 오는 일과 책에 시선을 고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돌아오는 날 저녁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에서 또 다른 중년의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혼자서 여행을 하였는데 일에서 지치면 옷가지 몇 개와 책 두어 권을 챙겨 비행기에 오르는 듯 보였다. 비치에서 책을 읽으며 며칠을 보낸 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그네들의 삶이지 않을까 싶었다. 지리적 한계는 더 이상 한계가 아니었다.
떠나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것만을 아닐 것이다. 생각만 바꾸고 행동에 옮기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선배 네 쌍이 부부동반으로 올랜도로 2주간 골프여행을 떠났다. 아내들은 비행기로 보내고 남편들은 아내를 비행장까지 데려다준 후 자신들이 직접 운전을 하여 플로리다로 내달렸다. 매일 골프를 칠 것이라 하였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삶을 즐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즐기는 만큼 자기 것이 된다. 주어진 한평생을 걱정하고 한탄하며 보낼 수도 있을 것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낙천적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바락바락 악만 쓰고 살 것이 아니라 여행도 하고 이웃과 나누면서 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이 가족과 함께하여 좋기도 했지만, 시야를 넓히는 좋은 계기도 되지 않았나 싶다. 마치 아버님께서 뉴욕을 여행하신 후 새로운 시야가 생겼다고 하신 것처럼 말이다. 조금 더 일찍 눈을 뜨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어디 아버님뿐이겠는가.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떠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 56세의 한 젊은 형제를 떠나보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떠난다. 관속에 누워 깊게 파인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2016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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