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신앙의 선배 김관문 장로님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7. 3. 3. 00:43

 신앙의 선배 김관문 장로님의 장례식이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 걸쳐있었다. 선배님은 1931 2 18일생으로 평남 평원군 서해면에서 태어나셔서 만주에서 공부하셨고 해방 후 월남하시어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6.25동란에 참전하셨고 1967년 캐나다로 이민 오셔서 1981년 동부 장로교회(현재 본 한인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으셨던 분이시다.  

 선배님은 늘 격려하시는 분이셨다. 편지로 주변 분들을 응원하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분이셨다. 험담하거나 나쁘게 이야기하는 일이 없으셨다. 장례예배를 집례하신 목사님은 선배님으로부터 받은 격려의 편지가 140여 통이나 된다고 하였다. 세 통의 편지를 읽어주셨는데 하나같이 진지하고 긍정적이고 따뜻했다. 위로의 편지를 받은 분들이 주변에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앙의 후배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는 교훈을 주셨다. 실제로 당신께서 그런 삶을 사셨다. 매월 얼마씩의 돈을 한가족 선교회에 후원금으로 보내는 등 이곳저곳을 후원하셨다. 한두 번 도움을 주고 끝내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 20, 혹은 30년 이상 꾸준하게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배님은 크든 작든 가진 것으로 늘 나누는 분이셨다탈북민이 이사하는데 가구가 없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쓰시던 가구를 선뜻 내어주는 분이셨고 자동차에 연료을 가득 채워주시던 분이셨다. 

 삶 가운데 어려운 일도 있으셨다. 63세 때 집수리를 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흘간 혼수상태로 지내시기도 했다. 이후 건강을 잃으셔서 교회에서 장로직도 내려놓으셨다. 아내 김복순 여사(권사)와 은퇴 후 여행이나 하면서 지내겠다고 생각하셨는데 김 여사께서 수술하시다가 뇌출혈을 당하셨고 이후 거동이 불편해져서 기대했던 여생을 보내지 못하셨다. 그러시던 중 12년 전 아내 김 여사께서 먼저 천국으로 가셨고 약 일 년 전 사랑하던 첫째 딸까지 세상을 떠났다. 혼자가 된 큰딸과 함께 여생을 보내겠다고 따님이 살던 곳으로 이사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따님까지 먼저 떠나보내신 것이다. 그런데도 삶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으셨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애쓰셨다. 그러면서 편지로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며 사셨다개인적으로 선배님과 교류는 많지않았지만, 주변에서 자주 이야기를 들어온지라 오랜 교분을 가진 것처럼 여겨졌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동년배이신지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으리라

 한세상 살면서 선배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웃에 대해 나쁜 말은 일절하지 않고 격려하면서 살고 싶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돕고도 싶다.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않고 어려움을 통해 내게 주는 교훈을 깊이 마음에 새기며 가진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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