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정홍헌 장로님
이택희
친절한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머무르려 한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기 때문이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 배려하지 않거나 친절하지 않은 사람 곁에 있으면 괜스레 불편하다. 때로는 왜 자신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자신이 초대한 손님이 식탁에 놓인 핑거볼(finger bowl, 손가락을 씻는 물)에 담긴 물을 마시는 걸 보고 자신도 그 물을 따라 마셨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이런 배려가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비결이지 않을까.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통의 대한민국 남성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조용조용 대하면서도 존중했다. 대부분 사람에겐 급한 면이 있는데 그의 경우 매사에 급하지 않았고 여유가 있었다. 걸음걸이는 활기찼지만 부드러웠고 말소리도 조용했다. 커피점이나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 때면 소곤대는 목소리로 나긋나긋 주문했다.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주로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누구든 오 분가량만 이야기해 보면 그분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의 사람됨이 남다르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첫 만남에서의 내 느낌이 정확한 것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어쩌면 대한민국 출신 남자들은 그에게서 말하는 태도나 자세, 신사다움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사람을 떠올리며 ‘빨리빨리’를 생각한다거나 시끌벅적 떠드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늘 경청하는 사람이다. 충분히 듣고 반응한다. 대화 중 말을 자르거나 끼어들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말할 때 눈을 쳐다보며 끝까지 들으려 애쓴다. 그러는 중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수줍은 듯 조심스레 화두를 꺼낸다.
자연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고 즐기며 경배할 줄 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진중(鎭重)하고 겸손하다. 새들도 어깨에 앉아 쉬고 갔다는 성자(聖者)의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그 역시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특별히 정원 가꾸기를 즐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연의 광대함을 찬양하며, 정갈하면서도 고혹한 자태의 아름다움을 향유(享有)한다. 원초적 창조에 자신의 노력을 추가하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고 그것을 누리며 즐기는 것이다.
그는 또한 시(詩)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노래하려 애쓴다. 창조의 경이(驚異)로움을 발견하고 글로 표현하려 노력한다. 시인은 작은 아픔에도 아파하고 이웃의 신음에 함께 몸살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분명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사람과 자연, 사물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몸짱이다. 어느 날 뵈니 떡 벌어진 어깨에 보통 근육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야 몸만들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르나 나이가 들면서 지속적으로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를 유지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터. 부럽기도 하여 비결이 무엇인지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수줍어하며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가까운 커뮤니티 센터에서 일주일에 몇 차례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방증(傍證)이었다. 어쩌면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자신의 몸도 소중히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웃을 초대하여 대접하기를 즐기신다. 집을 공개하고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쉬다가는 그것을 기뻐한다. 특별히 손수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기를 좋아하신다.
정홍헌 장로님을 생각할 때면 소박한 봄의 전령사 갯버들이나 데이지(daisy)가 떠오른다. 들장미나 백합화의 모습도 그려진다. 특별히 누가 내게 인간 정홍헌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자유인' 또는 ‘신사(gentleman)’라 말할 것이다.
* 짧은 시간에 한 인격체의 삶이나 개성을 논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르게 표현하여 결례를 범할 수도 있겠고 단면을 보고 전체인 양 말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겠다. 혹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나 변변찮은 필력(筆力)으로 누(累)를 끼쳐드렸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정홍헌 장로님의 칠순잔치를 앞두고 박천유 사모의 부탁으로 쓴 글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