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뽑힌 채 말라가는 풀처럼 보였다.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듯하였다. 십여 년 긴 병과 투쟁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투사의 모습으로 살아온 그는 눈이 퀭하게 들어갔고 뼈만 앙상히 남아있었다.
가만히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다리를 쓰다듬었다. 거기에도 온기라고는 없었다. 꺼질 듯 말듯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등불이었다. 살짝 바람만 불어도 꺼져버릴 몸으로 침상에 누워있었다. 암을 치료하기 전 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마르지는 않았었는데.
한국에서 요양하면서 형제자매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후 처음 만나는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딴청을 피우면서 딸과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잘 살아 이제는 걱정이 없으시겠다고 말했다. 잔잔한 미소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찬송가를 좋아하시는지 물었다. 작은 목소리로 ‘아침 해가 돋을 때’라고 이야기했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면 쉬 그 곡을 선택하지 못했으리라. 순간을 아끼며 살아온 사람만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부르자고 제안할 수 있는 곡이었다. 작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의 음성이 애잔하나 선명했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살동안 햇빛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되게 하소서 한 번 가고 안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되게 하소서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되게 하소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의 신선함을 그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순간도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내일은 죽어가는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그날이라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나 분명한 것은 나도 그처럼 침상에서 내일을 그리워하며 찬송가를 부를 날을 맞게 되리라는 것이다. 정말 그날 후회가 없다고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관용하며 살 일이다. 그러기 위해 늘 사뿐히 걷고, 늘 주의 깊게 듣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공손하게 어루만지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날 병상을 찾은 목사님께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셨단다. 처음에는 없다고 대답했으나 잠시 후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단다. 왜 아닐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사랑하고 용납해야 하는 것을.
내가 찾아가 만난 이틀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선물로 안겨주고 하늘나라로 갔다.
발인예배에서 이런 내용으로 기도를 드렸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살동안 햇빛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이 시간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세월을 아끼며 매 순간 의미 있게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오신 유석희 집사님을 떠나보내드리는 발인예배로 모였습니다. 은혜의 하나님, 유석희 집사님을 우리 곁에 보내주셔서 늘 그 온유한 모습을 뵈면서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사랑하는 남편과 아빠, 동생을 떠나보내며 아파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동지 유석희 집사님께서 보여주신 그 온유함과 겸손함, 성실함을 늘 기억하며 촌음을 아끼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남겨진 두 자녀 재연과 재상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두 자녀가 아버님께서 원하셨던 것처럼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는 삶을 살면서 자손 대대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 시간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유족들에게 위로게 되게 하옵시며 참여하신 성도님들과 조문객들에게도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발인예배를 마치고 잠시 후면 이 땅에서 사용하셨던 사랑하는 집사님의 육신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됩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 날을 소망하며 이겨내게 하옵소서. 남은 장례 절차를 주님께서 주관해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사오며 부활의 산 소망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딸 재연의 추모사>
우선 오늘 저희 아버지 천국 가는 길에 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기억하는 저희 아빠는 사랑이 넘치고 가정적인 아빠였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저희를 데리고 캐나다에 이민 오면서 이민생활을 견디고 헤쳐 나가면서 언제나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암과 싸우면서 아빠는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았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히려 저희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이겨내시는 아빠 모습을 보면서 아주 큰 감동을 받았고,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가족들이 함께 서로 힘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거대한 록키산맥 보다도 더 큰 존재로 저희 가족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준 아빠에게 너무 고맙고, 더 잘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항상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아빠가 지금도 너무 보고 싶고, 앞으로도 많이 보고 싶을 테지만 이제는 천국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빠,우리 모두가 사랑합니다.
Before I begin, I would like to thank everyone here on behalf of my family for being here for my dad. I know that many of you have travelled far to be here which means a lot to my family and I. My dad was the most loving person I know, he always put my mom, my brother and I first and looking back, I was very lucky to have such a loving person as my dad.
Despite battling his cancer for many years, he always stayed optimistic, positive and kept his faith in God and I will never forget that about him.
I will miss my dad more than I can ever say. I will miss his laugh, his jokes, his smile and his text messages that he sent me every day telling me about his day and asking what I ate for lunch at work. I cherish all the memories I have with him, especially the last couple months where we spent more days at the hospital than elsewhere. Those days weren’t easy but I am very happy that we fought the battle with him until the end. Even though he is no longer here with us, I know that he is watching over us in heaven in peace, which makes m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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