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도 좋고 잔잔히 흐르는 컨트리 음악도 듣기 좋습니다. 이곳 토론토에서 만난 인연들을 생각해도 좋고, 100세를 넘긴 노 교수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글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이민진 씨가 쓴 소설 파친코를 원문으로 읽는 것도, 한국수필가협회에서 보내준 수필집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일도 좋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땅에서 올라오는 봄 냄새를 맡았습니다. 흙에서 봄 냄새를 맡는 것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아내와 오붓이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생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팀 호튼 커피점에 앉아 젖 먹는 아이가 엄마 눈을 보듯 아버지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편 40편 5절
2021년 3월 24일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작자 미상>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가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시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류시화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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