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상처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4. 1. 22:43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는 고국에 계신 부모 형제를 자주 뵐 수 없다는 것일 게다.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할 때 그 아픔과 상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암 판정을 받고 짧으면 4개월 길면 6개월 사실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한국의 가족들은 내게 그 사실을 바로 알려주지 않으셨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충격을 받을까 노심초사하신 것이다. 아버님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자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로 사실을 알려주셨다.

 아버님이 위암 말기이고 여러 곳에 전이되어 수술도 받지 못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랬다. 소식을 듣고 바로 아버님을 뵈러 들어갔다.

 오롯이 아버님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 하였고, 말씀하시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복죽, 땅콩죽 등 각종 죽을 비롯하여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드리려 애쓰시는 어머님을 뵈옵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감사한 일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큰아들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무척이나 흡족해 하셨다. 막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한 큰손녀가 쓴 손편지를 읽으며 위로를 받으시기도 하셨다. 하루는 거울에 비친 당신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렇게도 튼튼하던 다리가 이렇게 볼품 없이 말라버렸구나 라시며 탄식하셨다. 매일 두 시간 이상 걷는 등 운동하는 일을 철칙으로 삼으셨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아버님과 한 달여 시간을 보낸 후 토론토로 돌아왔다. 시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다시 아버님을 뵈러 나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토론토로 돌아온 지 한 달이나 지났을까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 내려 아버님의 상태가 어떠신지 알아보기 위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이미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였다. 내가 비행기에서 가슴 졸이고 있을 때였다.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통곡하고 또 통곡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늘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곤 한다. 해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자주 꾸는 악몽은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일일 게다. 나 역시 악몽을 꾸곤 했었는데 악몽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버님의 병간호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가신 조혜라 집사님께서 토론토 시간으로 오늘 아침에 소식을 보내주셨다.

 

 "안녕하세요.  한국에 와 있느라 촌장 모임과 촌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죄송함 가운데에 있지만, 그래도 염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 간단히 인사 남깁니다.

 아버지는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 계세요.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인데, 이 호스피스 병동의 담당선생님이 의사인 동시에 목사님이세요.  매일 회진 때마다 위로와 기도로 채워 주고 계세요. 저도.. 이제라도 아버지 곁에서 간병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의료진들이 아버지의 통증 완화를 위해 모든 의약처방으로 도와주시고 계시지만 4월을 넘기기는 어려우실 것 같다고 하셔서..  지금 부모님을 두고 나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남편 한집사는 오늘 격리를 마치고 아버지를 이틀 가량이라도 만나뵐 수 있어서 그걸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귀국해야 할 것 같고, 저는 아버지 마지막까지 지켜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 가운데 암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암으로 인한 통증이 없이 기적과 같은 날들을 보내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평안한 마지막 날들과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 기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소식을 접하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아버님과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실 조혜라 집사님과 이 주일간의 격리 끝에 단 이틀 아버님을 뵙고 다시 토론토로 돌아오실 한규원 집사님을 생각할 때 안타깝고 감사하다. 두 분 인생여정 가운데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병중에 계신 아버님과 가족분들을 위해 기도드린다.     

 

 

<상처가 그늘을 만든다/강경호>

 

나무는 상처받아도

속 끊이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다

누군가 칼을 내리쳐 팔을 잘라도

나무는 울지 않는다

 

품이 넓은 나무일수록

그늘이 기인 나무일수록

수많은 상처의 자국

마치 곰보 같지만

그 상처의 힘으로

새 가지를 뻗어

넓고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박남준>

 

고추밭에 고웃대들이 다 쓰러졌다

홀로 비바람 견디기에 힘들었던가

아니라면 그 어떤 전율 같은 격한 분노에

몸을 온통 내던졌는가

 

내 기억의 뒤란에 쓰러져 누운 것들이 있지

오래 묵었으나 삭지 않아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지

작년 여름 쓰러져 죽은

미루나무가지들을 잘라 지주대로 삼는다

껴안는구나

상처가 상처를 돌보는구나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역이며 세워져

한몸으로 일어선다

그렇지 그렇지

푸른 바람이 잎새들을 어루만지는구나

 

 

<마음의 성처/정연복>

 

몸의 상처는

세월 가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앙금같이 오래 남는다

 

잊을 만하다가도

한순간 덧난다

 

네 맘 아프게 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겸손히 용서를 구하면

그 한마디면

 

깨끗이 나을

마음의 상처들 수두룩하다

 

너나없이

가엾은 사람들인데

 

한시바삐 용서를 구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며

 

그런 상처들

말끔히 없애고 싶다

 

 

<상처의 문장/정일근>

 

지난 태풍에 마당의 벚나무가 쓰러졌다

은현리에 뿌리 내린지 10년 된 벚나무였는데

큰바람 제 몸 제 뿌리로는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그래서 나무를 다시 세워주었는데

세워주고 마음 다주며 보살폈는데

나무의 몸. 몸의 가지에 껍질이 터진다

저 할복하는 것 같은 나무의 후휴증을 보며

나무가 제 뭄으로 쓰는 상처의 문장을 익는다

쓰러져 본 사람은 알지

제 상처의 피에 펜을 찍어 쓰는 문장이 있다는 걸

그 문장 어떤 눈물로도 지울 수 없다는 걸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성 요한 크리소스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 않는 사람은

끝없이 많은 고통을 당해도 강해진 채

고통에서 걸어 나온다

 

자기를 스스로 배반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아무도 그를 반대하지 않아도

그는 무너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비록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상처를 내고 부당하게 다룰지라도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해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깨어 있고 분별력을 갖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씁쓸한 일을

고귀한 마음으로 참아 견디어 내자!

 

-성 요한 크리소스톰, 초대 교부 AD 347~407

 

 

<상처/이승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 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 입은 타인에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를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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