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기별(奇別)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3. 31. 22:31

  2021 3월 마지막 날 아침이다. 막 내린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1/4분기를 되돌아보며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다면 감사이다. 둘째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 다시 걷게 된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 마음에 있는 둘째의 이름은 조이(Joy, 기쁨)이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어 상처와 아픔에 관한 시를 읽기로 했다.

 

 

</김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기쁜 소식/閑素>

 

언제 결혼하느냐고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늘 끼고 있어서

가정이 너무 화목하여서

엄마 아빠와 여행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좋아서

딸이

집을 떠나지 않는 거라고

남자가 생기지 않는 거라고

가정을 꾸리지 않는 거라고

수군댔지만

부끄러운 수군거림을 멈추고

가만히 기다렸더니

드디어 기별(奇別)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걸음을 제한하여

초대받고도

응하지 못함이

서럽지만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수군거림을 멈추고

조용히 기다렸더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황동규>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는

모두 상처가 있었다

흠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오을 입은 마음의 상처

오후내 저녁내

몸 속에서 진 흘러나와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아직 채 감싸지 못하고 쑤시는구나

가만,

내 아들 나이 또래 후배 시인 랭보와 만나

잠시 말 나눠보자

흠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벌레 먹은 나뭇잎/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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