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덮었던 흰 눈은 자취를 감췄고 잔설만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백색 향연을 펼쳤던 대지는 고동색 민낯을 드러냈다. 단풍나무 낙엽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썩어야 거름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걸까. 거름으로 변한 낙엽 덕분에 나무는 저마다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며 뻗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낙엽이 썩어지듯 썩어져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하리라.
눈 덮인 대지가 원래의 모습인 양 한동안 착각하기도 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숲은 민낯을 내보이며 매사에 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텅 빈 숲을 걸으며 비우는 연습을 했다. 비우고 비우다 보면 마음자리도 조금씩 넓어질 것이다.
뽀드득뽀드득 잔설 밟는 소리, 다라라라락 다라라라락 나무둥지를 찍어대는 딱따구리 소리, 앙상한 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눈 부신 햇살, 인적 드문 한적한 숲, 가지는 새순을 머금고 망울을 터트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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