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미우라 아야꼬와 빙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3. 14. 11:45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는 잡화점을 운영했었다.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 궁리하다 새로운 물건을 가져다 두기로 하였다. 다른 잡화점에서 물건을 사던 아이들이 아야코의 가게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니 수입도 좋아졌다. 하루는 아야코의 남편 미쓰요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로 인하여 이웃 가게들의 매상이 줄어들지 않았겠어요. 그들이 가져가야 할 수입을 가로챈 것인지도 몰라요.”
아야코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야코 부부는 이웃 가게들을 생각해서 더 이상 새 물건을 들여놓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공평하게 나누어 이웃 가게와 나누어 가졌다. 가게는 더 이상 아이들로 붐비지 않았고 수입도 떨어졌다.
 1963년 정월 초하루 미우라 아야코는 친정으로 신년인사를 드리러 갔다. 우연히 아사히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1천만 엔의 상금이 걸린 소설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출품을 결심한 아야코는 잡화점 문을 닫은 후 저녁 10시부터 새벽 1시~2시까지 소설을 썼다. 1963년 12월 31일 새벽 두 시에 소설이 완성되었다. 아야코의 남편 미쓰요는 원고를 직접 신문사에 가지고 가서 제출하였다.
 1964년 7월 10일 아사히 신문은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이 1등으로 당선되어 천만 엔의 상금을 타게 되었다는 소식을 세상에 전했다. 소설 ‘빙점’은 그렇게 태어났다. 아야코는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잡화점을 그만두었다.
 
 
<저녁의 집/유수진>
 
아침이라면 모를까
저녁들에겐 다 집이 있다
주황빛 어둠이 모여드는 창문
수줍음이 많거나 아직 야생인 어둠들은
별이나 달에게로 간다
 
불빛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다 저녁의 집들이다
 
한 켤레의 염치가 짝짝이로 돌아왔다
수저소리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돌아왔다
국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설거지를 끝낸 손가락들이
소파 한 끝에 앉아
어린 송아지의 배꼽, 그 언저리를 생각한다
 
먼지처럼 버석거리는 빛의 내부
어둠과 빛이 한 켤레로 분주하다
저녁의 집에는 온갖 귀가들이 있고
그 끝을 잡고 다시 풀어내는 신발들이 있다
 
적어도 창문은 하루에 두 번 깜박이니까 예비별의 자격이 있다
 
깜박이는 것들에겐 누군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매번 돌아오는 관계가 실행하는 수상한 반경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있고
스위치를 딸깍, 올리면 집이 된다
 
별은 광년을 달리고 매일 셀 수 없는 점멸을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도
어수룩한 빛들은
얕은 수면 위로 귀가한다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발췌): ‘저녁의 집’외 3편은 요즘처럼 세상이 코로나 19로 어수선할 때 너무나 소중해진 당연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가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인다. 허영만 시인, 김영 시인  
 
 
<해감/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자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들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2021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세 분의 응모작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형식의 파격을 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상을 관조하면서 내면을 응시하는 특성을 보여서 서정의 밀도와 품격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작품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어구의 사용이 꽤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시도 한글 문장의 규범 안에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세 분의 작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래가 그래’는 응모 작품 중 드물게 생태학적 사유를 동원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의 진지함이 주목을 받았다. 고래 내장에 축적된 폐기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표현한 착상은 새로웠지만 그 주제가 시적인 언어로 유연하게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집은 기상청 지부’는 아버지의 삶을 유머르스하게 표현하면서 그 사이에 연민의 정서를 적절히 병치하는 솜씨를 보였고, 감정을 절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삶의 내력을 표현한 점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후’의 의미가 모호해서 공감의 폭을 확정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 리빙 포인트’외 2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 중에서는 ‘리빙 포인트’보다 ‘해감’에 더 눈길이 갔다. ‘리빙 포인트’가 일상의 삶의 무료함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다양함이 시상의 집중을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해감’은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평범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백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의 시적 재능이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이에 ‘해감’을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강은교 시인 이승원 문학평론가

'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 아침에  (0) 2021.03.27
한적한 숲  (0) 2021.03.16
집밥  (0) 2021.03.11
그룬딕아 고맙다  (0) 2021.03.03
평범한 일상은 선물  (0) 2021.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