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님은 병원에 계시면서 의식이 있으실 때면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송구합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셨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 진정한 자기희생이며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정진석 추기경님은 신학교 입학 이후 평생을 4시 반 기상, 밤 10시 취침 원칙을 시곗바늘처럼 지키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
“흔히 행복이란 소유 혹은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자신의 것을 버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알려주신 추기경님은 버리는 것 중에서 특별히 ‘시간’을 강조하셨다. ‘자신의 시간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일’이 행복임을 깨우쳐 주셨다. “행복하세요. 행복은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유언 같은 말씀을 남기신 추기경님은 2021년 4월 27일 선종하셨다.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소탈하면서 겸손하셨던 정진석 추기경님처럼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탈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버이날을 맞아 시 몇 편 읽고, 나눈다.
<어머니의 눈물/박목월>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어머니의 가을/김사랑>
어머니, 어머니의 가을은
언제 잊으셨어요
여자의 삶을 포기하고
한 분의 아내로
아들 딸의 어머니로
참깨단을 털면
깨알같이 쏟아지던 가을 햇살
등허리는 강처럼 휘어지고
억새처럼 흰머리뿐
주름진 얼굴처럼 패인 골짜기를 따라
돼지 감자꽃 무던히 피고 지던데요
어머니의 가을은
방문 창호지 사이
발라놓은 코스모스 꽃잎
텃밭에 남몰래 피던
다알리아 꽃 몇송이
가을잠자리가 왔다가도
콩타작에 들깨단을 널어 널며
언제 잃어버렸는지요
저의 작은 바램은
어머니의 가을을 찾아 주는 일인데
언제 그렇게 세월을 보내셨는지요
<나비 정첩/안이숲>
무릎에 나비 한 마리가 다소곳이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고운 나비로 태어나 한번 날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이
여름을 건너뛰려 하고 있네요
종손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문 한 채 간수하느라 공중을 더돌아 잔잔한 이곳에 뿌리를 내린 당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낮은 발자국 소리에 묻은 녹슨 고백 소리 사뿐히 들려옵니다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遠行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
얘야! 시집와서 빗장을 지키는 게 평생의 일이었단다, 느리게 접힌 쪽으로 아픈 고개를 쟁여둔 어머니 다음 생애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소리 수없이 들었어요
빗장에 방청 윤활제 솔솔 뿌리면 마당 한 귀퉁이의 세월에 퍼렇게 멍든 잡초가 피어오르고 당신은 눈코입이 삭아 자꾸만 떨어져 내립니다
붉은 눈물이 소리가 되어 공중을 묶어놓고, 납작하게 접힌 마음을 일으켜 이제 편안하게 쉬세요
여닫이에 꼿곳한 등을 붙들린 지 수 십 년, 뒷목부터 낡아가는 수의는 그만 벗으셔도 돼요
염습을 마친 8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겹겹이 에운 문틈 사이로 녹슨 쇠 울음소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당신의 평생 그 어디쯤에서 터지는 발성법을 익혀 이리도 가늘고 긴 곡비를 준비했을까요
우리 한번은 서로 열어야 하는데
어머니, 어느쪽이 제가 들어갈 입구일까요
*2021년 천강문학상 시 부분 대상 당선작
<아버지의 봄/이인환>
1.
봄이 오는 소식을
아버지는 등으로
짊어지셨다
기게 가득 외양간
쇠똥 거름 뒷간 인분
논으로 밭으로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언 땅 뚫고 기지개 켜는
봄의 생기를
뜨거운 입김 날리며
아버지는 거뜬히
등으로 짊어 지셨다
2.
아버지의 봄에는
삼남이녀의 봉오리가
망울져 있었다
아지랑이 햇살 버들강아지
봄 노래 한 줄 제대로
부를 줄 모르던
아버지의 지개 위로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
두 딸의 아버지 아들의
어깨 위로 시나브로
내려 앉는다
<아버지/이문조>
아버지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힘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읐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프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돈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개 아버지 되어보니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을
돈이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할 까봐
가족들이 실망할 까봐
힘들어도
아파도
돈 없어도
말을 못했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눈물/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고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더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 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지 오래구나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
땅을 보면 마음이 복잡한 것은
누가 건네준 짐도 아니건만
바위보다 무거운
무겁다 한들 내려놓을 수도 없는
힘들다 한들 마다할 수도 없는 짐을 진 까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메일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부모/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누구의 가슴에/ 나태주>
누구의 가슴에 꽃힌 어버니날 꽃보다도
손수레 끌고 가는 중년의 잠바 위에 붉은 꽃
그 꽃이 우선적으로 아름답고 고와라
어버이 고맙습니다, 아들딸들이 달아줬으리
*아~ 어머니 가슴에 붉은 꽃을 꽃아드린 적이 언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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