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조커(joker)라는 영화 보셨어요? 안 보셨으면 한 번 보세요.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 있어 아빠도 좋아하실 거예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토론토에 왔다가 폭설로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 더 토론토에 머무르게 된 딸아이가 해준 이야기였다. 토론토에서 매주 화요일은 대부분의 영화관이 할인 혜택을 준다. 전날 내린 폭설로 곳곳에 눈이 쌓인 이런 날에는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영화의 내용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역)이 광대 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일을 하던 아서는 폭행을 당하게 되고, 동료 랜들은 아서에게 권총을 선물한다. 아서가 아동병원에서 총을 가지고 일한 것을 알게 된 이사장은 아서를 해고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남자들이 아서를 괴롭히며 폭행한다. 아서는 권총으로 남자들을 죽이게 된다. 이 일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광대 킬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광대 가면을 쓰고 시위까지 한다. 아서는 사람들의 관심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까지 알게 된다. 아서는 조커라는 이름으로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 역) 쇼에 출연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조커를 보면서 나 자신의 언어습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언어로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지?, 또한 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또 그들을 대할 때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조커의 주인공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고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가가 상대방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하키 캐나다의 해설자 돈 체리가 리멤버런스 데이에 퍼피를 달 것을 권유하며 ‘유 피플-당신네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여 스포츠 넷 해설자의 자리에서 해임된 일이 캐나다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미시사가 시장을 지낸 고령의 맥칼리온 여사는 최소한 돈 체리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이 이야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며칠 간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사과하지 않다가 여론에 밀리어 겨우 자신의 입장을 밝혔는데 무슨 이야기냐며 돈 체리는 마땅히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이민자들도 포함되는데 이들을 향하여 함부로 말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 중 하나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세리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약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도 하신다. 영화 조커의 내용을 되새김질하며 ‘나는 평소 어떤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지,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존중하며 말하고 행동하는지' 심각하게 되묻게 된다.
우리의 표정이나 말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가 하는 말은 예시적, 선험적 선언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가능하면 상대를 격려하고 상대에게 힘을 주는 말을 하면 좋지 않을까. <閑素>
<1950년대, 하와이 북서쪽의 카우아이 섬. 당시 이 섬은 인구 3만 명의 작은 섬으로, 대부분 주민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섬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청소년 비행문제도 심각했고, 범죄율도 높았다. 이 섬에서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삶을 예약하는 것과 같았다.
1954년, 소아과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 연구팀이 꾸려져 카우아이 섬으로 향했다. 어떤 요인이 사람을 범죄자나, 도박중독자, 미혼모 등으로 만드는지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같은 해, 임신한 모든 여자를 대상으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40년에 걸친 추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얻은 연구 결과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별다른 것이 없었다. 불씨가 꺼져가던 이 연구가, 에미 워너 교수에 의해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로 방향이 돌려졌다. 워너 교수는 833명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고위험 군으로 분류했고, 이 가운데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을뿐더러, 되레 좋은 환경의 아이보다 더 잘 성장한 72명에 집중했다.
연구 방향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마이클은 엄마가 16살 아빠가 19살 때 태어났는데 미숙아로 태어나 버려지다시피 컸고 밑으로 세 명의 동생을 뒀다. 10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가 실업자라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할아버지와 아빠는 자주 싸워서 집안 분위기는 늘 뒤숭숭했다.
문제아가 될 수지로 가득한 이런 환경에서, 마이클은 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고, 스포츠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리더십도 좋았다. 특히 18세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메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강에 문제가 있던 엄마는 자주 실직 상태에 빠졌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메리를 자주 학대했다. 하지만 메리는 학교에서 평균 이상의 수행 능력을 보였고, 친구들과 잘 사귀고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에미 워너는 이 72명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이라 불렀다. 에미 워너는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느냐는 질문을 버렸다. 대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주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역경으로부터 지켜줬나. 워나 교수는 이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불렀다. 이를 집중 분석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72명이 가진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준 어른이 1명 이상 있었다. 마이클에겐 할아버지가 그랬다. 마이클의 아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마이클에겐 달랐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정서적 지원이라고 한다. 톨스토이가 그랬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
누군가가 인생의 한 시절을 지켜준다는 것. 그것만큼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 마이클과 메리가., 그리고 1955년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833명 중 72명이 그런 선물을 받았던 것이리라. 사랑으로 큰 아이들, 믿음과 지지라는 자양분을 받은 아이들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이들은 예외 없이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따온 글)
아래의 글은 네이버 블로그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기브 윙 코치)'에서 따온 글입니다.
하와이 군도 중 북서쪽 끝에 둘레가 50킬로미터쯤 되고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한 카우아이라는 섬이 있다. 아름다운 폭포 줄기가 계곡 사이사이를 흘러내려 신비한 장관을 이루며, 기묘한 협곡과 암석들이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언제나 화사한 꽃나무와 푸른 초목들로 무성한 아름다운 곳이다. 섬 전체가 울창한 열대 정원 같다고 해서 '정원의 섬 Garden Island' 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다. 카우아이 섬은 《남태평양》, 《블루하와이》, 《쥐라기 공원》, 《트로픽 썬더》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카우아이는 환상적인 대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천국 같은 섬이지만 1950년대만 해도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와이 군도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것은 1959년이다. 그 이전의 카우아이 섬은 관광지로 개발되지도 않았으며 그야말로 오지였다. 섬 주민들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청소년의 비행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섬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마치 불행한 삶을 예약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미국 본토로부터 소아과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가진 일군의 학자들이 이 섬에 도착했다. 훗날 사회과학의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연구 중 하나로 기록될 카우아이 섬 종단연구(오랜 세월 동안 같은 연구 대상자를 계속 추적 조사하는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연구자들은 1955년에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해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추적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카우아이 섬이 연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이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겪을 수 있는 불운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 카우아이 섬이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그 섬에 산다. 인구 유동이 적은 이 섬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닫힌 세상이었다.
이 연구는 결국 한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겪는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나 사건 사고, 그리고 가정환경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얼마만큼이나 미치는가를 체계적이고도 전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야심 찬 시도였다. 이 아이들이 30세가 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연구는 계속되었으며, 무려 90%에 가까운 698명이 조사 대상으로 끝까지 남았다. 종단연구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렇게까지 높은 잔존율을 보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1955년에 태어난 카우아이 섬의 아이들을 10여 년 넘게 추적 조사한 연구의 첫 결과물은 1971년에야 《카우아이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으며, 이 아이들이 18세가 될 때까지의 연구 결과는 1977년에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연구가 발견한 것은 사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이었으나, 연구자들은 그때까지도 이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카우아이 섬 연구의 자료 분석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에미 워너'는 심리학자였다.
그는 이 방대한 자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무언가 분명 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에미 워너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특정한 어려움이 훗날 어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애썼다. 예컨대, 엄마가 알코올 중독자이면 자녀 역시 알코올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 10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범죄의 길로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아이는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가? 엄마의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는 어떤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보이는가? 조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편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적응성에 있어서 어떠한 편차를 보이는가 등등.
에미 워너는 833명 중,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였다. 201명의 공통점은 몹시 가난하며, 부모가 이혼이나 별거 중에 있고, 부모 중 한 명이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 질환자인 세 가지 큰 어려움을 다 가지고 있었다.
이들 '고위험군'은 실제로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학교생활 부적응과 학습장애를 보였고 학교와 집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켰다. 이들이 커서 18세가 되었을 때에는 상당수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소년원에 들락거리거나, 이미 여러 차례 범죄 기록을 갖고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거나 미혼모가 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들은 나머지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미 워너는 끝내 알고 싶었던 것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이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행동들과 이 아이들이 겪었던 시련 사이에는 구체적인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것은 3분의 2뿐이었다. 물론 높은 비율이었지만, 이 말은 나머지 3분의 1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에미 워너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였다. 고위험군에 속한 아이들 중에서 3분의 1 가량에 해당하는 72명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니, 이건 분명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었다. 72명은 밝고 건강한 청년으로 문제없이 성장했다. 그 수가 한 자리 수라면 모를까, 72명이라면 30%에 가까울 만큼 많은 숫자였다. 그들은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미국 대학 입학시험(SAT)에서 상위 10% 안에 든 사람도 있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놀란 에미 워너는 72명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고위험군 아이들이 18세가 되었을 무렵의 인터뷰 결과를 정리하던 에미 워너는 마이클이라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이클은 그 섬의 어느 누구보다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이클이 태어날 당시 그의 어머니는 16세의 앳된 일본계 소녀였고 아버지는 19세의 필리핀 소년이었다. 10대 소년 소녀였던 마이클의 부모는 마이클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야 겨우 결혼하게 된다. 물론 양쪽 집안에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마이클을 낳게 된다.
마이클은 태어날 당시 2kg밖에 안 되는 미숙아였고 태어나자마자 3주 동안 시설도 열악한 군대 병원의 인큐베이터에서 보내야만 했다. 마이클이 엄마와 함께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한국 전쟁 말기에 징집되었던 마이클의 아버지는 2년이나 더 복무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이클이 열 살 되었을 때, 그에게는 동생이 셋이나 생겼다. 하지만 그 무렵 그의 부모는 결국 이혼하게 된다. 20대 중반이 된 그의 엄마가 마이클과 동생들을 모두 버리고 섬을 떠나버린 것이다. 마이클의 엄마는 그 후 다시는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클의 아빠는 아이 넷을 데리고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마이클의 아빠와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쯤 되면 마이클은 약물 중독자나 소년범 아니면 적어도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에 맞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이 거대한 연구의 기본 가설이 유지될 수 있다. 에미 워너 교수의 눈에 마이클은 이 거대한 연구의 기반이 된 상식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마이클은 에미 워너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제 막 18세를 넘긴 마이클은 놀라울 정도로 밝고 명랑한 매력적인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성적은 초등학교 이래 늘 상위권이었고, 독서력도 늘 자기 학년의 수준을 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의 성취도는 상당했다. SAT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점수는 전 미국 상위 10% 안에 들었으며 학교 성적은 대부분 A였고 전교 석차 역시 10위 안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원만해서 동아리 대표와 학생회장으로도 선출되었다. 마이클은 미국 본토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한 상태였다. 그는 장차 교사가 되리라는 구체적인 진로 계획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자신이 노력한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격도 긍정적이며, 자율적이고, 도덕적이었다. 마이클은 행복해 보였다. 마이클은 세상의 모든 부모와 학교교육이 만들어내길 원하는 이상적 청년이었다. 에미 워너는 마이클의 자료를 다시 점검해 보았으나 자료 조사는 철저했다. 다만 마이클은 상식에 반하는 경우였을 뿐이다. 마이클은 마치 그에게 닥친 모든 역경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마이클은 에미 워너로 하여금 이 연구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만들었다.
볼일 없이 잊혀갈 뻔한 연구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엄청난 발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미 워너는 이 72명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이라 불렀다.
에미 워너는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느냐는 질문을 버렸다.
대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 주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우아이 섬 연구는 시작하고 나서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회복탄력성에 대한 연구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워너 교수는 카우아이 섬 연구를 통해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과계(Relation)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 말대로, 사람은 결국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이 카우아이 섬 연구의 결론이다. "사랑 없이 아이는 강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사랑을 먹고 자라야 아이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아갈 힘을 얻는 법이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아 존중심을 길러가며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근본임을 카우아이 섬 연구는 알려준 것이다.
[출처] 회복탄력성 (김주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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