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운전수였다. 아침에 둘째를 학교까지 태워 주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오는 운전수. 물론 수입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일을 진지하고 진득하게 하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빠가 딸에게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기러기 아빠로 딸과 떨어져 산 십 년, 그 공백을 만회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큰딸은 이미 집을 나가고 없었다. 대학입학 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아이티로 봉사활동을 떠난다고 하였다. 해밀턴 장로교회에서 파송예배가 있을 예정인데 참석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을 떠나는 딸이 대견했고 파송예배에 초대해 주는 딸이 고마웠다.
해밀턴 장로교회는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예배당 안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예배시간 중 파송식이 진행되었다. 인솔자인 노영호목사와 여섯 명의 대원이 앞으로 나가 섰고 고영민 담임 목사께서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딸은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이 어땠는지 물었다. 현지에 한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의사였고 사모님은 스페인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아이티에서 만난 어린 자매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자신의 방 화장대 위에 두고 바라보곤 했다. 2008년에 단기봉사활동을 다녀온 이후 딸아이는 한 차례 더 아이티를 다녀왔다.
일 년이 좀 못되었을 것이다. 포트 이리 딸아이 집 탁자에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아이티 봉사활동 중에 만났던 김용재 선교사께서 보내주신 책이라 하였다. 읽어야 할 논문이 많다며 먼저 읽어도 좋다고 말했다. 은근히 읽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십여 페이지나 읽었을까. 끝내지 못하고 중단하였다. 나 역시 읽을거리가 많았을뿐더러 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아서였을 터이다.
며칠 전 우연히 김용재 선교사께서 쓰신 책 ‘오선지에 쓰신 삶’을 다시 집었다. 읽기 시작하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선교사님의 땀과 눈물,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이티에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이 많았다고 했던 15년 전 딸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딸은 아이티에서 있었던 두 차례 봉사활동을 통해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했었다.
2008년 파송예배 당시 예배를 인도하시고 말씀을 전하셨던 고영민 목사님은 현재 내가 출석하는 본 한인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계시고, 봉사팀을 인솔하였던 노영호 목사님(부친 노상래 장로)은 캘리포니아 소재 미국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되셨다. 큰딸은 ECMC(Eire County Medical Center) 노인과 전문의 겸 뉴욕주립대 버펄로 의대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한 인생이 이토록 숭고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다.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도 확인하였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우리네 인생 가운데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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