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동짓달만 되면 우울해진다고 썼다. 위로 딸만 넷인 가정에서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난 작가는 자신의 탄생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았다. 작가의 모친은 오매불망 아들을 바랐는데 딸이 나왔으니 허탈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모양이다. 모친은 당시의 허탈했던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곤 했었나 보다. 기쁨보다는 걱정과 염려,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었던 그날의 이야기가 작가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동짓달의 분노, 동짓달의 쓸쓸함, 동짓달의 푸르스름한 기운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동짓달이 되어야 했다고, 동짓달 추위보다 더 당당해져야 했다고 썼다. 이제는 슬프지 않다고,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다고 고백하는 작가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통해 독자에게 위로를 주고자 하는 마음 씀씀이 존경스럽다.
아픈 기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쓰리고 아픈 기억일랑 애써 감추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터.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아픔을 통하여 독자를 위로한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우뚝이 선 것이다. 아래 글은 수필가 김귀선 선생님의 ‘동짓달 이야기’ 전문이다.
“'동짓달’이란 말엔 푸르스름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 기운은 무시로 나를 우울하게 했다. 깊고 깊은 어느 서러움의 골짜기를 서성인다. 겨울만 되면 스산한 바람을 안고 내게 흘러오는지 그런 날은 몇 날 며칠 밥맛까지 잃었다. 그래서 동짓달은 내게 뼛속까지 시린 달이다.
내리 딸 넷만 낳은 엄마가 그해 동짓달, 또 딸을 낳았다. 새벽 첫 닭이 울 즈음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대성통곡했다. 밤새 마음 졸이던 언니 둘은 정지 바람벽에 기대어 훌쩍였고, 엄마 통곡에 놀란 어린 언니 둘은 작은방에서 베개를 안고 울었다. 찬바람이 문풍지를 떨어대며 방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엄마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핏물 진 몸인 채로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왈칵 찬바람이 절규처럼 들어왔다. 언제부터 울타리에 붙어있었던지 방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동네 아낙들이 지불지불 골목으로 흩어졌다. 엄마는 앞이 캄캄했다. 아들 없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했으니 주위의 시선은 더 차가울 것이고, 그 차가움은 당신 스스로를 옥죄게 할 것이었다. 엄마는 고무신을 걸리는 대로 끌고 골목 단감나무 아래까지 왔다. 그곳은 우리 집 울타리가 끝나는 곳이면서 삼거리다. 열사흘 달이 훤했다. 하지만 이 골목도 저 골목도 범굴처럼 으스스하게 보였다.
‘이 일을 우째 할꼬. 이래가 우째 살꼬. 어매요 어매요 우짜면 좋은기요.’
엄마는 시집올 때 넘어온 고갯마루 쪽을 바라보며 외할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하소연 끝에 죽음을 생각했다. 눈물이 연이어 목을 타고 흘렀다. ‘우째 죽어야 할꼬?’ 엄마는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사위는 죽음처럼 고요했다.
그때, 삼거리 아래 초가에서 가래 끊는 소리가 들렸다. 높게 치솟았다가 가랑가랑 아래로 꺼지는 소리였다. 병이 깊은 산호 어른의 긴 들숨과 날숨이었다. 오늘내일하던 숨 고개는 며칠째 이승의 줄을 놓지 못해 시름하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이 저케 어렵구나!’ 엄마는 문득 두려웠다. 그제야 한기가 들었다. 뒷골에서 노루가 끽끽거리고 짚동 훑는 바람 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부은 얼굴을 감싸며 엄마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부엌에서 울고 있는 언니를 불러 더운물을 퍼오게 해서 구석에 밀쳐놨던 애기를 씻겼다. ‘고마 고추 하나만 달고 나왔으면’ 자꾸만 눈물이 나와 앞이 어릉어릉했다.
“내가 니를 나아놓고는 얼매나 얼매나 서럽던지.”
생전의 엄마는 반복해 그날 이야기를 했다.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참아내야 했던 엄마의 그 버거운 시간까지 내게 전해왔다. 터를 잘 판 막내딸 덕분에 아들을 낳았으니 이젠 옛 이야기 할 여유도 생겼다고 엄마는 생각하겠지만, 듣는 내 입장에선 하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왜 자꾸 할까 싶었다.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서럽다가 슬프다가 짜증 났다. 약간의 분노 같은 것도 일었다. 오래된 슬픔 같은 그날의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내게 쌓여갔다. 슬픔은 내 핏줄 속에 무시로 흐르다가 동짓달만 되면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부풀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표현할 수 없는 눅눅한 기운으로 나는 잠식되었고 아예 그 속에서 겨우 내내 살 때도 있었다. 봄이 와도 잘 깨어나지 못해 봄 앓이로 이어지곤 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나의 핏줄 하나가 이어져 있는 동짓달은 그래서 자꾸만 슬퍼지는 달이다.
올해도 생일을 며칠 앞둔 날에 둘째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생일이 곧 닥치는데 잘 챙겨 먹으라는 부탁이다. 언니의 그 말속엔, 축복받지 못한 탄생의 애잔함이, 순간이나마 아들이 아니어서 원망했을 갓난아기에 대한 미안함이 들어 있으리라. 바람벽에 붙어 울었던 언니도 화인처럼 가슴에 박힌 그날을 아직 떼 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생전의 엄마 또한, 억장이 무너지던 날들의 무게를 덜어내려 반복해 내게 속풀이 했을 것이다. 지우려 해도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삶의 한 덩어리를 속절없는 이야기로 녹이고 녹여보려 했었나 보다.
동짓달의 분노, 동짓달의 쓸쓸함, 동짓달의 푸르스름한 기운을 이겨내려면 내가 동짓달이 되어야 했다. 동짓달 추위보다 더 당당해져야 했다. 그러면 동짓달에 휘둘리지 않게 될 것이고 나아가 여유로움으로 계절을 부리게 될 것이다. 해마다 동짓달은 찾아올 것이고, 변함없이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이젠 슬프지 않다.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다. 사랑스럽게 맞이하리라. 그리고 가슴 깊숙이 안아주리라. 지나고 보면 슬픔도 기쁨도 다 내 귀한 삶인 것을.
베란다에 내리쬐는 동짓달 햇살이 오늘따라 참으로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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