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영혼의 돌봄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3. 3. 15. 23:02

‘내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주제로 영성수련회를 가졌다. 강사는 맥매스터대학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하였으며 ‘기도의 영성’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신태성 목사로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10시부터 3시까지 본한인교회 E.M. Chapel에서 진행되었다. 되새김질 위하여 올려둔다.

기도의 영성을 쓴 계기: 기도에 관한 책이 너무 영적이었다. 너무 어려웠다. 너무 기술적이었다. 예를 들면 5분 안에 축복받는 기도 등 그래서 기도의 영성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질문1. 기도생활은 쉬운가 어려운가?
기도생활이 막히면 은혜 생활이 막힌다.

기도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영적인 생활이 오래될수록 기도생활이 어렵다. 하나님의 기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화에 대한 기대라고 하기도 한다. 딸이 리듬체조를 잘했다. 온타리오에서 3등을 했는데 내셔널레벨에 가더니 거기는 어나더 레벨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레벨이 낮을 때는 수월하지만 수준이 올라가면 다른 레벨이 된다. 우리의 영적 수준도 마찬가지이다.

사막의 경험-신앙은 길게 수평으로 가다가 조금씩 성장하고 또 길게 수평으로 가다가 조금 성장한다. 기도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커지기 때문일 수 있다. 사막의 경험이 없다면 오아시스도 경험할 수 없다.

오한복음 21:18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나님의 기대대로 우리가 변해야 하는데 그 수준으로 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긴 과정이 필요하고 사막을 경험해야 한다. 사막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기도생활이 어렵다.

<기도의 방해물들>
외부적 방해물: 환경적 요소가 중요하다. 기도가 잘 되는 곳이 있다. 교회가 그런 곳이 아닌가. 고양이 두 마리가 집에 있으면 기도가 방해가 될 수 있다.
미디어나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도 생활에 방해를 주기도 한다. 사탄도 외부적인 방해물이 된다. 어둠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어떤 것들을 하도록 이끈다면 그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귀도 그렇게 이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어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부적인 요소와 관련된 방해물: 오래된 자아가 그것이다. 자연인-오래된 자아, 죽은 자아를 뜻한다. 영적인 감각이 전혀 없거나 거의 죽어있다. 시험이 와도 시험인지 죄인지도 모른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종교적 자아라고 부른다. 금요기도회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지 않으실까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도들 중 많은 수가 이런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은혜 아래에 있는 상태는 새로운 자아라고 한다. 영적인 감각이 살아있어서 성령의 리듬을 감지한다. 성령께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인지한다. 리듬감이 있어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세 가지 상태가 우리 모두에게 공존한다. 사막의 경험을 할 때 이 세 가지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존 웨슬리는 이렇게 간증했다. 회심 이후 내가 성령을 체험하고 회심한 이후에 과거와 같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승리자로 만드셨다. 은혜 안에 있는 상태는 이런 것이 아닐까.

두 번째 내부적 방해요소는 피상적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이 그 예일 수 있다. 기도를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생각하는 기도는 좋은 기도가 아니다. 내가 기도한 후에 내가 한 기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기도를 할 때 기도는 안 하고 주기도문을 열 번 외우자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세 가지 활동이 필요하다. 인클라이닝-내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 스피킹-하나님께 고하는 것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스팅-듣는 것이 필요하다. 명상은 기도가 아니다. 명상은 인클라이닝 즉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없다.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기도 생활은 참된 기도생활을 대신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방해요인은 어떤 결핍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훈련의 부족이 그 첫 번째다. 훈련이 없으면 기복을 경험하기 쉽다. 훈련이 있으면 그 기복을 줄일 수 있게 된다. 훈련이 우리를 은혜 안에 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한다. 기복을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원이 부족한 경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원들이 있는데 그것을 의존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도생활을 방해받게 된다.

<기도의 네 가지 자원들>
첫째: 성령의 경험이다. 기도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경험을 주신다. 사막을 걸을 때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것은 경험이다.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 경험은 우리를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짜장면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먹어봐서 아는 것의 차이이다.
둘째: 전통이다. 향심기도, 관상기도, 묵상기도, 통성기도. 전통은 창문과도 같다. 창밖을 내다보면 창문마다 밖이 다르게 보인다. 창문뒤에 보이는 모습은 다 똑같다. 다른 창문을 통해서도 내다볼 필요가 있다.
셋째: 이성이라는 자원을 풍성히 사용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이 없으면 진리와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생각하는 기도는 좋은 것이 아니지만 기도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경험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도를 생각할 때 이성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것은 이성이다.
넷째: 기도와 말씀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고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은 것이다. 양식이 필요하고 호흡이 필요한데 말씀은 양식이고 호흡은 기도이다. 양식과 호흡이 없으면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 먹는 것이 있어야 호흡을 하는 것과도 같다.

질문2. 기도생활(영적인 삶) 없이도 사람들은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이 영적인 삶을 추구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정신이 잘 되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긍정적으로 살면 된다. 몸과 정신이 잘된다고 영혼이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영혼이 잘되면 몸도 잘되고 정신도 잘 될 가능성이 높다. 영혼은 진정한 자유와 초월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영혼이 잘되면 자유와 초월이 일어난다.

심리학적 개념에서의 자유는 참된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도 한다. 참된 자아와 내가 인지하는 자아는 다르다.

종교적 자유는 어떤 권위나 체계 아래 있으므로 느끼는 안정감 그것이 자유이다.

영적인 자유는 자기를 부정하고 비우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채움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자아 즉 확장된 자아이다. 헨리 나우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인기도 영향력도 사그라 드니 영혼의 자유는 다르다.

무의식이 잘되려면 선행과 성찰을 많이 하면 된다. 디스오더에서 오더로 변화는 가능하다. 오더의 상태 노멀의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가 된 건 아니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선행과 성찰을 통해서 제대로 제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초월이 일어나는 장소는 영혼이다. 영혼은 신의 영역이라도도 이야기할 수 있다. 성령님이 존재하는 곳이다. 성령이 가장 집중적으로 머무시는 곳이 영혼이다.

영혼이 바뀌면 무의식이 바뀌고 인생의 변화도 일어난다. 성령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그분이 성령님이 영혼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이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우리의 몸도 없어지고 정신도 쇠하고 그러나 우리의 영혼의 문제는 다르다. 이 땅을 떠나서도 이 땅 안에서 영원을 사는 것이 영혼의 문제이다.

폴 트루니에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이 없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의 주된 주제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 없이 구원을 추구하는 이야기이다. 악순환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정치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이 행복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소냐 루보르미르스키는 인간행복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만약 내가 그것을 갖는다면(if I have)… 내가 그것이 된다면(if I would be)…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만약 새 차를 갖는다면 내가 만약 새집을 갖는다면 내가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오래가지 않는다. 새 차는 3개월 새집은 3년 정도 갈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실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이에 반응하는가에 달려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면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주신다. 우리의 실제를 재해석하도록 도우신다.

과학은 심리학이나 철학,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영혼의 문제를 다룬다. 선, 인생의 의미, 죽음, 죄의 딜레마, 초월적 존재, 구원의 길, 인간의 유한성 등은 심리학이나 철학 과학이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좋은 삶의 4가지 단계(로버트 스피처)>
1) 본능적 단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2) 상대적 단계: 비교를 통해서 얻어지는 상대적 행복감, 상대적 행복감은 인간을 더 황혜화 시킨다.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 이를 통해서는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3) 존재적 단계: 내가 공동체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때 행복해진다. 누가 나를 인정해 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노욕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공헌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행복감이 낮아진다.
4) 초월적 단계: 이 영역이 영혼의 영역이요 성령의 영역이다. 이 영역이 하나님 나라이다.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간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헨리 나우웬은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상태/ 이 세상을 사랑하나 이 세상의 사랑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 이 세상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에 영향받지 않는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서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표현했다.(빌 4:11~13)

<영적 행복과 성취의 독특성(마이크 킹)>
“많은 사람들이 이인슈타인의 격언에 깊은 인상을 받곤 한다. ‘종교 없는 과학은 설득력이 없으며,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과학으로 하여금 훨씬 더 빨리 진행되도록 하며, 과학 없는 종교는 종교로 하여금 훨씬 더 멀리 보도록 한다. 이 둘 사이의 작위적인 통합은 어쩌면 우리를 더 눈멀게 하고 절뚝거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자비, 긍휼함, 희열, 공동체성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만 나타낼 수 있다.

변화가 가장 힘들지 않을까? 자기를 벗어나는 일이 힘든 것 같다. 버리는 일이 어렵다. 내려놓고 열어놓는 것이 어렵다. 열린 마음을 가질 때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질문 3: 영혼을 돌보는 것이 왜 중요할까?
<영혼의 개념 이해>
영혼은 내적 물줄기와 같다. 숨겨져 있고 몸과 정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영적인 측면이다.
개신교 영성을 더 구체화 한 달라스 윌라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의 내적 물줄기와도 같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다른 부분들이 힘과 방향과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가능하도록 한다. 그러한 물줄기가 본시 되어야만 하는 형태를 갖게 되는 순간, 우리의 영혼 그 자체가 하나님의 광대함과 그의 나라 그리고 창조 세계에 뿌리박게 되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다른 것들이 생기를 얻고 그러한 물줄기를 따라 움직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끊임없이 회복되고 부유하게 된다.” (영혼도 자체적 의지와 성질과 활동을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다.)

영혼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가장 깊고, 직접적인 장소로 성령이 머무시는 장소이다.
-영혼의 영역은 말 그대로 영원한 것을 살아가는 장소이다.
-가장 급진적인 변형의 장소이다.

영혼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돌보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다. 반면 영혼은 사단이 공격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영혼의 돌봄(soul care)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 자기를 돌보는 습관적인 영성을 키워가는 것이다.

영혼의 돌봄에 대한 부르심은 오래된 부르심이다. 기독교 교회의 초창기부터 그것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전통적 목회적 돌봄의 확립된 형태로 존재했으며 당면한 시대가 필요로 할 때마다 더 활발히 이뤄졌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선조적 유산에 대한 갱신을 요청하는 동시에 현대적 연구들과 우리의 독특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영혼의 돌봄을 다시 확립할 필요가 있다. Barber, Betsy, and Chris Baker. “Soul Care and Spiriual Formathon: An Old Call In Need of New Voices.” Journal of Spiriual Formation and Soul Care, 7 no 2 (2014): 272

<스스로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5가지 이유>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놓이게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리듬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휴식을 위한 계획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영혼을 돌볼 때 경험하는 6가지 사건(민디 칼리과이어 Mindy Caliguire)>
-개인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 상승
-만물의 존재 이유와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이유
-참된 자기 깨달음과 긍휼의 마음
-개인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연결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혜
-자유와 용서

영혼을 돌보면 쉼이 생긴다. 몰입이 살아나게 된다. 몰입이 희열을 준다.

리처드 포스터는 자신의 책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에서 영적 훈련을 위한 실천 사항들을 세 가지 범주 들 속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내면적 훈련: 묵상, 기도, 금식, 학습, 두 번째는 외적 훈련: 단순함, 홀로 있기, 순복, 그리고 섬김,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훈련: 고백, 예배, 지도, 축하. 이 세 가지 범주들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공동의 가능성 즉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것들 위해 사용된다.

비우는 것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영혼을 돌볼 수 있을까?>
<돌봄의 원천>
-하나님 안에서라야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finds rest in God 어거스틴 고백록에서)
-내가 나 자신을 돌보려고 시도했을 때는 오히려 나 자신을 잘못된 길로 이끌 때가 종종 일어났던 반면, 나의 삶에 의미를 주시고 나를 진실로 인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돌봄을 받으려고 했을 때, 훨씬 더 놀라운 돌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론 페리 Aron Perry)

<계속적인 열정 -> 습관>
영적 성장의 세 가지 정의들
-개신교: 칭의->성결->성화
-가톨릭: 정화->조명->연합
-목회적(?): 세속적->교회멤버->회심(하나님 경험)->크리스천->소그룹->영혼의 돌봄(기도생활)->제자도의 단계->리더의 단계->완전한 해방

“모든 큰 일들은 작은 것들로부터 생겨난다. 모든 습관의 씨앗은 사실 아주 작은 결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반복될 때, 습관은 점점 자라나 더 강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뿌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스스로 더 단단히 자리 잡고, 가지들이 성장하는 것 같이 말이다. 나쁜 습관을 깨뜨리는 것은 우리 안에 강력한 독초를 뿌리 뽑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반면, 좋은 습관을 세워가는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아름다운 꽃을 심어나가는 것과 같다. (James Clear 2018 Atomic Habits: An Easy & Proven Way to Build Good Habits & Break Bad Ones. Avery 22 & 27 ‘아주 작은 습관의 힘’으로 번역되었음)

<실천적 전략>
-Intimacy: 영혼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것
-Depth: 영혼이 본연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Fruit: 영혼이 원래의 상태를 초월(trnascedence)하는 것

<결론: 1)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면 <Solitude(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alone or far-off from society, seclusion, loneliness,: a lonely place(as a desert)>와 Silence(prohibit or prevent from speaking, complete absence of sound)를 배워라. 침묵과 홀로 있기를 배워야 한다. 침묵은 말을 멈추는 상태이다.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려고 생각의 말까지도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공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2) 기도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자. 3) 영혼의 돌봄을 위한 습관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