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My Own Life)’이라는 글에서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는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느끼는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습니다. “Above all, I have been a sentient being, a thinking animal, on this beautiful planet, and in itself has been an enormous privilege and adventure.”
‘나의 인생’은 2015년 2월 19일 자 뉴욕 타임스에 실렸고 올리버 색스는 2015.년 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 ‘My Own Life’/Olver Sacks/ Published Feb. 19, 2015 New York Times
<아래의 내용은 My Own Life의 한글 번역이다>
한 달 전까지, 나는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믿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지금도 여든한 살의 나이로 하루에 일 마일을 헤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운이 다했나 봅니다. 몇 주 전 간에 다발성 전이암(multiple metastases)이 발생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9년 전 안구 흑색종(occular melanoma)이라 불리는 드문 종양이 한쪽 눈에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레이저 및 방사선 치료 때문에 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러한 종양이 전이되는 것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불운한 2퍼센트에 해당합니다.
첫 암 진단을 받은 이래 건강하고 생산적이었던 9년을 누릴 수 있었다는 데 대해 감사한 심정이지만, 이제는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전이된 암은 내 간의 삼분의 일을 차지합니다.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이 특별한 종류의 암이 번지는 것을 저지할 도리는 없습니다.
남겨진 몇 달 남짓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내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가능한 한 풍요롭고 깊이 있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하겠지요. 이제 나는 가장 아끼는 철학자들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흄을 보며 의욕을 얻습니다. 65세 되던 해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깨닫고, 그는 1776년 4월 어느 하루를 들여 짧은 자서전을 씁니다. 흄은 그 자서전에 <나의 생애(My Own Life)>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소멸을 앞두고 생각을 기울인다,”고 그는 적고 있었습니다. “불치병에 따르는 고통에 거의 시달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보다 묘한 것은, 지인들이 다수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기백을 잃고 괴로워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그러하듯 학문엔 동일한 열의를 쏟으며, 벗들에겐 동일한 유쾌함으로 대한다.”
지난 80년을 살아오며 나는 충분히 운이 좋았습니다. 심지어 흄이 보낸 20년의 세 배하고도 5년에 더하여, 일과 사랑 양면에서 꼭 같이 풍요로웠던 15년이 주어졌습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다섯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흄이 남긴 몇 페이지 남짓의 글보다는 좀 더 긴 분량의) 자서전이 올해 봄에 출판됩니다. 여러 다른 책들도 거의 작업을 끝마쳤습니다.
흄은 덧붙입니다. “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스스로의 성미를 다스릴 줄 알았고, 사교적이고 열려 있고 명랑한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친분을 쌓는 데도 능했다. 적의를 품는 일도 거의 없었고, 욕망들 사이에서 중용을 견지할 줄 알았다.”
그 점에서 나는 흄과 다릅니다. 지금껏 애정으로 가득 찬 관계와 우정을 즐겨 왔고 진짜 적의를 품어 본 적도 없었으나, (나를 아는 그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스스로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나는 강렬한 기질에 난폭한 열정, 욕망 앞에 극단을 추구하는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그럼에도 흄이 그의 글에서 남긴 한 문장이 진실로써 내 뇌리를 때립니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삶에 대하여 거리를 두기도 어려운 일이다.”라고, 그는 적고 있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흡사 높은 고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듯이, 또한 삶의 각 부분을 연결 짓는 고리들을 또렷하게 느끼면서, 내 삶을 돌이켜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는 강렬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우정을 다지는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글을 쓰고,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차원의 이해와 통찰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원합니다.
이는 대담성과 명료함과 소박한 언어,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견해를 가다듬고자 하는 노력과 결부될 겁니다. 물론 즐길 시간도 남겨둘 겁니다 (조금은 바보처럼 놀아도 좋겠지요.)
불현듯 시야가 걷히고 초점이 명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중요치 않은 것에 쓸 시간은 없습니다. 나 자신과 내 일, 내 친구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매일 밤 “뉴스아워(NewsHour)”를 들여다보는 일도 없을 겁니다. 더 이상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쟁이나 정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무관심이라기보단 거리 두기입니다. 여전히 중동 사태와 지구온난화와 불평등의 증가에 대해 깊이 염려하고 있지만, 그건 더 이상 내가 고민할 몫이 아닙니다. 미래에 속한 문제니까요. 나는 촉망받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큰 기쁨을 느낍니다. 내게 조직검사를 실시하고 암 전이를 진단한 의사 역시 포함해서요. 그들이 미래를 잘 이끌어가리라 느낍니다.
지난 십여 년에 걸쳐 동시대인들의 죽음을 점차 강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나의 세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매 죽음 앞에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단절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떠나면 우리 같은 이들은 다시 존재하지 않겠죠. 그 누구와도 꼭 같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결코. 사람이 죽으면 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남기고 그들은 떠나고, 그것은 유전적이고 신경적인 운명이기에. 하나의 독특한 개인으로 살아남아 각자의 길을 걷고, 각자의 생을 살며, 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의 운명이기에.
두렵지 않은 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지배하는 심정은 고마움에 가깝습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이 받았고 얼마간은 되돌려 주었습니다.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으며 글을 썼습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갔고, 작가와 독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느끼는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습니다.
<Oliver Sacks에 대하여>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 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상’을 수상했고,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으며,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색스는 독자들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초대하여 근본적인 형태의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썼다. 그는 왕립내과학회,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2008년 엘리자베스 2세는 그에게 대영제국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색맹의 섬》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 웠다》 《깨어남》 《편두통》 등 10여 권이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자서전 《온 더 무브》와 삶과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통찰한 칼럼집 《고맙습니다》, 인간과 과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과학에세이 《의식의 강》, 자신이 평생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들에 관한 우아하면서도 사려 깊은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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