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멈추고 듣는 것 멈추고 바라보는 것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3. 12. 20. 00:45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경청이라 했던가. 90년대 초 몇 년간 신입사원 후배들을 대상으로 ‘직장예절’이라는 과목을 강의했었다. 교육 내용 중 경청을 강조하는 장(chapter)이 있었다. 소통하려면 먼저 경청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청과 소통에 대해 강의까지 한 나였지만 스스로 대화 중 얼마나 경청하는지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상대가 이야기할 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반응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받아서 어떻게 응수할까를 더 많이 생각했던 듯하다.
들으려면 멈추어야 한다. 멈추지 않으면 경청할 수 없다. 생각을 멈추고 상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에 이어 무슨 말로 응수할까 궁리하면 이미 경청에서 저만큼 멀어져 있다.
새소리를 들으려 해도 멈추어야 한다. 물소리를 들으려 해도 멈추어야 한다. 음악을 들으려 해도 숨 죽이고 연주자의 연주에 집중해야 한다. 경청은 멈추는 것이고 집중하는 것이다. 경청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 습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탄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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