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적절하지 못한 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2. 1. 00:33

<적절하지 못한 말/한소>
말은 쓰레기고 똥이다
시들어 버린 꽃이다
말라가는 낙엽이다
메마른 사막이다
푹푹 빠지는 진흙탕이다
냄새나는 시궁창이다
시체가 썩는 냄새다

적절하지 못한 때
적절하지 못하게
내뱉거나
지껄이는 말은
똥이고
쓰레기고
구린내다


<나무에게/이해인>
나무야 안녕?
너는 내가
자면서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알고 있지?
사람들은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데
너는 항상
끝까지 잘 들어주고
때로는 앞질러 들어주어
정말 고마워
사랑은
잘 듣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너는 매번 새롭게
깨우쳐주는구나
나도 너를 닮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세상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사람들을 만날 게
사랑의 첫 마음으로
잘 듣는 사람이 될 게


<바다를 잃어버리고/이성선>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다를 거닐며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을 잃는 것입니다

당신을 다 안다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눈을 감는 일입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이 가을에 이젠 떠나야겠습니다
멀리서 더 깊이 당신에 젖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와 흔들리는 가슴
물새들의 반짝임도 울음소리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들어야겠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듯이
멀리 떨리는 손으로
등불 아래서 펴 보아야겠습니다


<바람 속에서/이성선>
산에게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바다로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나무에게 가는 길이
별에게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나의 길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늘 산에 있고
바람은 늘 바다에 가득하고
바람은 나무 끝에 먼저 와
그곳에 서 있다

나의 길은 바람 속에 있다
잎새 끝에는 언제나
새벽 별이 차갑게 떨고
바람은 길에서 나를 울렸다


<백담사/이성선>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빈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이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리고도 어언 수천 년
빈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살았능가 살았능가/최승자>
살았능가 살았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 살았능가 살았능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대답하라는 소리만 살았능가 살았능가
삶은 무지근한 잠 오늘도 하늘의 시계는 흘러가지 않고 있네

<생각은/최송자>
생각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마음은 몸에 깃들지 않고 몸은 집에 거하지 않고 집은 항상 길 떠나니.
생각이 마음을 짊어지고 마음이 몸을 짊어지고 몸이 집을 짊어지고 그러나 집 짊어진 몸으로 무릉도원 찾아 길 떠나니,
그 마음이 어떻게 천국을 찾을까
무게 있는 것들만 데불고, 보이는 것들만 보면서, 시야에 빽빽한 그 형상들과 그것들의 빽빽한 중력 사이에서
어떻게 길 잃지 않고 허방에 빠지지 않고 귀향할 수 있을까
제가 몸인 줄로만 아는 생각이 어떻게 제 출처였던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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