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함께 밥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 너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2. 1. 23:39

<함께 밥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 너/ 한소>

한창 예쁘게 자랄 때
함께 밥 먹는 그 평범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어

네가 밥 먹자고 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곤 해

사실은
밥을 먹지 않아도
너와 너의 가족만 생각하면
든든하고 배가 부른데

네가 내 딸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데

늘 조심스럽게 마음을 읽고
챙겨주는 너
함께 밥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 너
그런 네가 있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구나

네가 온다고 하니
며칠 전부터
마음이 먼저 저만치 마중 나가있다


<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운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리

<별의 아픔/ 이성선>
내가 지금 아픈 것은
어느 별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밤늦게 괴로운 것은
지상의 어느 풀잎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토록 외로운 것은
이 땅의 누가 또 고독으로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하늘의 외로운 별과 나무와
이 땅의 가난한 시인과 고독한 한 사람이

이 밤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나
서로 통화하여 앓고 지새는

병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여


<시간이 사각사각/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삭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획,
역사가 획,
문명이 획,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아하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아하 기실은
사회가 획,
역사가 획,
문명이 획,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술독에 빠진 그리움/ 최승자>
무수한 꿈이 그녀를 짓밟았다 독한 희망에 그녀는 썩어갔다 그리고 오늘밤 또다시 바람은 하늘 밖에서 그녀를 부르고 오오 벼락 치는 그리움에 절망이 번개 광선처럼 그녀의 뇌 속에 침투한다 그녀의 머리통이 깨어지고 꿈이 좌르르 쏟아진다 뇌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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