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위로의 노래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2. 2. 23:31

<응원가 / 한소>

*에스까밀료의 붉은 망토가
현관 앞 꽃병 위에 걸쳐 있다

호레 호레~
환성(歡聲)이 요란하다

괜한 일로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위로하는 응원가인가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투우사 이름



https://youtu.be/CoV2YOjFowY?si=zIM67K_T_aH1rfBp


<눈부신 속살/나태주>

담장 위에 호박고지 가을볕 좋다
짜 랑 짜 랑 소리 날듯 가을볕 좋다
주인 잠시 집 비우고 외출한 사이
집 지키는 호박고지 새하얀 속살

눈부신 그 속살에
축복있으라


<복사꽃/이성선>
봄날 길 없이 온 너는
갈 곳 없어 더 화안하다
몸 찾은 곳이
달뜨는 쪽 아니다

저 깊은 가지
허공에 피어 허공을 물들이는
너 목숨 저물면
거기 그냥 사그러져라

잠들 때 꽃은 가장 상기되는 시간
향기도 슬픔도 너의 것이 아니다

무심히 내게 던진 그늘에
그분 피가 붉게 섞여 있다

<별의 여인숙/이성선>
친구하고 저녁에
술 한 잔 하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는 싫어라

다른 녀석네 대문을 박차거나
낯선 여자 지저분한 문내에 안겨
아무렇게나 하룻밤 잠들고 싶네

그래도 그러지 못하고
바보처럼
허청허청 돌아오는 길

내 지붕 위에 나지막이 내려 걸린
하늘의 북두칠성
아 저기로나 기어올라가서
하룻밤 잠들어볼까

일곱 별 중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네 별
그 오목한 구석
하나님이 들고 계시는
잠자리채 같은 저 속에 들어가
쪼그리고 잠을 잘까

새벽에 깨어나
별들과 우주로 잠적해버리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깨질지라도

<시인/최승자>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 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 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

<악순환/최승자>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데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오 한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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