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세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5. 1. 31. 01:44


  시를 외우고 있다. 첫 단락을 외웠다 싶으면 둘째 단락을 잊어버리고 둘째 단락을 외웠다 싶으면 첫째 단락을 얼버무리기 일쑤다. 부사나 조사를 바꾸어서 외우고 형용사나 접속사를 빼먹곤 한다. 그나마 주어 동사만 잘 기억할 수 있어도 다행이다.
  시를 외우기 시작한 건 우연한 기회에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소그룹 모임에서의 일이었다.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을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었다. 마침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외우고 있었는데 무심결에 시를 열 편쯤 외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한 달여 지내는 동안 열 편 남짓한 시를 외웠다. 한 달 동안에 외운 걸로 따지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나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는 시가 몇 편이나 될까 생각하면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어느 날 아내가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유튜브에서 강연을 들었어요. 왜관에 계신 박 모 신부님께 누군가 이런 말을 했대요. 왜 신부님은 ‘토머스 머튼’ 이야기만 하시고 자신에 대한 말은 하지 않으세요?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신부님은 자신이 정말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토마스 머튼 말만 하는 것을 발견했대요."
  다른 시인의 시만 읽지 말고, 다른 시인의 시만 외우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를 쓰라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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