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어느 늦은 저녁 나는/한강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5. 1. 15. 04:08

<어느 늦은 저녁 나는/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13


<파란 돌/한강>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거울 속의 거울/김완하>
걸음마 시작한 손자 안고 거울을 본다
손자도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잠시 얼굴 돌려 골똘히 나를 올려다본다
거울과 현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거울을 넘어온 손자의 눈동자에 내가 가득 찬다
거울 속 얼굴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손자를 나도 본다
내가 한결 더 맑아졌다
그 눈길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아기의 눈빛으로 아기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좀 더 온유해질 것이다. 매섭고 싸늘한 눈초리를 버리고 아기의 눈길로 세상을 보면 좋겠다. 그런 영롱한 눈길로 까치밥이 남은 감나무, 햇살이 내리는 툇마루, 사랑하는 이, 막 꽃망울을 맺은 수선화를 보리라.” 문태준 시인의 해설


<세상 끝 등대/박준>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끈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 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안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 자성사 2018


<연년생/박준>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하고 울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 자성사 2018


<선잠/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들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는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 자성사 2018


<식물도감/안도현>
오동나무가 던져주니 감나무가 받는다
감나무가 던져주니 가죽나무가 받는다
가죽나무가 던져주니 또 살고나무가 받는다

까치 한 마리를
받는다


<겨울 강가에서/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각 없이 앉아있던 내게 새해 각오를 말하라고 했다. 마침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들국화’를 외우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얼떨결에 금년에는 시를 열 편쯤 외우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매달 한 편씩 외우는 걸로 해서 12 편을 외우면 좋겠다 싶다. 그래서 올 한 해 12편의 시를 외울까 한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했다. 67세에 읽는 제인 에어는 어떤 모습,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고전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에 잡은 책 ‘제인 에어’. 샬롯 브렌테와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가 자매였다는 사실도 상기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을 때가 군에 입대하기 전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제인 에어’는 영화로도 몇 차례 본듯한 데 그 내용이나 장면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늘은 아내가 시니어합창단 반주를 위하여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 합창단 연습 후에는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한다. 오후 4시 이후에나 오지 않을까. 아내가 저녁에는 북클럽 줌 미팅이 있다고 했다. 아내가 줌 미팅을 할 때 운동을 갈까 싶다. 제인 에어와 안톤 안톤 체호프 단편집, 한국 수필 12월호를 읽고, 세 편의 수필과 세 편의 시를 읽으리라.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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