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셀레브레이션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5. 2. 24. 23:05

<셀레브레이션/한소>
당신 수고 많았어
당신도 수고 많았어
우리가 이곳으로 온다고 했을 때 참 겁도 없었다
아는 이라고는 없는 곳에 어린 새끼 둘을 데리고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
걱정도 되고 해서 상계동에서 방이동까지 매일 새벽 운전해 다니며 사십일 작정기도도 했었지
그게 벌써 삼십 몇 년 전의 일이야
훌쩍 자란 새끼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날아간 지 오래고 손주도 네 명이나 생겼네
하루하루 꿈꾸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오늘이 토론토로 이주해 온 지 삼십 년 된 날이야
아내와 마주 앉아 먹는 자장면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쫄깃했다

  토론토로 이주해 온 지 삼십 년이 되는 날 아내와 해룡반점으로 짬짜면을 먹으러 갔다. 토론토로 이주할 결심을 하고 미지의 나라로 간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많았다. 일가친척이나 친구라고는 없는 낳선 나라로의 이주를 앞두고 아내와 나는 사십일 작정기도를 했다. 상계동 집에서 방이동 수동교회까지 낡은 자동차를 타고 새벽기도회에 나갔다. 어린 딸들이 곤히 잠들어 있을 때였다.
  토론토에 와서 삼십 년을 사는 동안 단 둘이 중국집으로 짜장면 먹으러 간 적은 한두 번 있었을까 말까 하다. 토론토로 이주하여 그만하면 잘 살아냈다고 자축하는 자리치고는 궁상맞을 수도 있겠으나 아내와 나는 무척 만족하였다. 조촐한 자리가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짜장면과 짬뽕이 함께 담겨 나오는 짬짜면을 주문하였고 아내는 잡탕밥을 주문하였다. 잡탕밥을 시키기 전 아내는 메뉴판을 뒤적이며 값이 저렴한 짜장면을 주문할까 망설였다. 그래도 근사한 음식을 주문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내 권유를 마지못한 듯 받아들였다.
  지난 삼십 년 캐나다에 살면서 허세 부리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왔다. 그런 검소함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하지 않았을까.  짬짜면 한 그릇, 잡탕밥 한 그릇에도 행복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삼십 년을 캐나다에서 잘 살아온 것, 자녀가 자신들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아내와 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며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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