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인가?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
머리카락은 왜 얼굴 앞에 걸쳐 놓았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쉽게 붙잡게 하려고.
그런데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지."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시인 포세이디포스의 풍자 시 일부>
한 학생이 엎드려 잠을 잔다.
지금은 아침 9시 30분.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도서관 책상 앞에 엎드려 잠자고 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학교인데.
잠시 후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둘이 책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두 녀석들도 테이블 빈자리에 앉았다. 한 친구가 슬그머니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 포카라고 불렸던 카드다. 잠자던 학생을 비롯한 세 명의 친구들은 카드놀이를 시작한다. 정숙을 유지해야 하는 장소임을 잊고 떠들어 댄 지는 이미 오래. 사서인 듯 보이는 키카 크고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수 차례 다가와 자제를 부탁했지만 눈 하나 깜짝 않는다. 평일 오전 소중한 시간에 수업을 빼먹고 저렇게 카드놀이나 하고 있다니.
1970년대 초였던가.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멍하니 앉아 잡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소설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공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놓친 가장 아쉬운 기회는 무엇일까 질문해 본다.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해야 할 청소년 시절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하며 보낸 시간이 아닐까. 공부에 더 집중했었더라면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녀석들도 언젠가 당신이 놓친 가장 아쉬운 기회는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청소년 시절 시간을 제대로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 앞머리는 길고 뒤쪽은 대머리이다. 양쪽 어깨와 발 뒤꿈치에 날개가 달렸고 손에는 저울과 칼이 들려있다. 기회란 바람 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다는 의미로 만든 작품일 터이다.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시간 엉뚱한 장소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슬쩍 미소 짓지나 않을까.
Posidippus: On a Statue of Kairós/Cærus (Time, in the Sense of the Opportune Moment)
“Where was your sculptor from?” “Sicyon.” “What did they call him? “Lysippos.”
………….. “Speaking of names, what is yours?” “Time, the All-Conquering Force.”
“Why do you tiptoe?” “I’m sprinting—as always.” “And what are your wings for?
………….. Each of your feet has a pair.” “Wind-borne, I flit here and there.”
“Why does your hand hold a razor?” “To be a reminder for humans.
………….. This is my likeness in life— keen as the sharpest-edged knife.”
“Why is your hair in your face?” “To be seized by the ones who approach me.”
………….. “Why, then, by Zeus, do you lack any at all at the back?”
“Once I have passed on my swift-flying feet, I’ll be captured by no one
………….. longing to make me rewind, reeling me in from behind.
“Why, and for whom, did the craftsman create you?”
“My lesson’s for your sake,
………….. stranger. For you I was made. Here, on his porch, I’m displayed.”
<by Julie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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