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한 건물의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정원을 쓰는 일과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사 건네는 일을 오랜 세월 동안 성실하게 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건물 주인이 바뀌게 되었는데 젊은 주인은 경비원이 해야 할 일들을 종이 위에 잔뜩 적어 주며 그에게 그대로 따라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때문에 며칠 뒤 경비원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들켜서 결국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문맹에다 나이까지 든 그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새 일자리를 찾아 다니다 실망만 안고 돌아오는 일이 되풀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자신에게 있는 전 재산을 털어 길모퉁이에 작은 담배가게 하나를 열었습니다. 담배가게는 그에게 상상하지도 못한 행운을 가져다 줍니다. 장사가 잘되어 그의 가게는 규모가 점점 커졌고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옆 동네와 다른 도시에도 지점을 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는 수십 개의 지점을 거느린 거대한 담배가게 체인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재산을 관리해 주는 은행원이 말합니다. “사장님께서는 글을 모르시는데도 이렇게 큰 성공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만약 사장님께서 글을 읽고 쓸 줄 아셨다면 지금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겠지요?”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만도 않을 것 같네. 나는 여전히 경비원을 하고 있겠지.”
좋은생각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닥쳐온 불행이 오히려 행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마음 속에 품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마련입니다. 반면 현재의 자리가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안주해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몇 년째 하던 일만 반복하게 되면 도전정신과 열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그러듭니다. 새로운 도전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변화 없이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무능하게 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전하는 자세,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이 사고하는 자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주하지 아니하고 변화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70년대에 봉제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사시던 사업가 분의 이야기 입니다. 봉제업은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업종인데 당시에는 우리 나라의 노동력이 경쟁력이 높았습니다. 경쟁국가와 노동력과 비교하여 숙련도는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쌌던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80년대 말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단순 근로자라 할 지라도 임금이 높아졌습니다. 반면 중국과 동남아의 싼 노동력에 의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의 봉제업은 사양산업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이 사업가 역시 경영환경이 바뀌면서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게 되고 이래저래 고전하던 차 1997년 말 IMF를 맞아 회사는 결국 부도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겨우 끼니를 이어가다 시피 하는 이 사업가는 주위사람 들에게 안타깝게 말합니다. “나도 한 때는 아주 잘 나갔었는데 데리고 있던 회사 직원이 돈을 가로채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라고.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아직도 감지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임금이 높아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을 때 사업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감지하여 다른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하였으면 어려움을 극복함은 물론 더 발전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예전에 사업이 잘 되던 것만 생각하고 안주하며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 였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불행이 우리 앞에 닥쳤을 때 우선은 닥쳐온 불행을 헤쳐 나가기가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닥쳐온 불행이 오히려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앞에 어려움이나 불행이 닥쳐올 때 뒤따라 올 행운과 축복을 기대하고 이겨내면 결국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나 스스로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려울 때 내게 닥쳐 오는 위기는 결코 위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신호입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펀드 매니저의 한 사람인 ‘조지 소로스’는1930년 항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상류 생활을 한 유태인 변호사 ‘티바다르 소로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그의 성공 밑바탕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생존의 본능 외에도 영국 이민 시절의 어려운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훗날 그는 “영국에서의 생활은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배고픔과 고난의 나날이었다. 오랜 세월 ‘소로스’는 새벽녘까지 부자들이 춤추고 술 마시던 ‘쿼그리노’의 웨어터로 일하며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에 이들이 남기고 간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그는 ‘런던 경제 스쿨(LSE)에 진학을 했으며 공부를 마친 후 월가(Wall street)로 진출했습니다. 어려운 고생 끝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세계증권 시장에서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리는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고생이 없이, 노력도 없이 처음부터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고통을 동반한 시련과 실패를 무릅쓰고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에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살을 애는 자기희생만이 성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기도 한 가수 서태지는 인기의 절정에 있을 때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 것입니다. 팬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지만 가수 서태지는 스스로 음악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정이 떨어지고 음악적 창의성이 부족해 짐을 느꼈습니다. 자신 만이 가진 음악적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많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을 뒤로 한 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며칠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가수 서태지가 돌아왔습니다. 많은 청소년 팬들이 떼를 지어 공항으로 나가 세시간 전부터 그의 입국을 기다리며 공항청사는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한 여학생은 “가수 서태지와 한 하늘 아래 사는 것, 서태지가 밟은 땅을 함께 밟으며 살 수 있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다”라고 그에 음악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표현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않으면 올림픽 팬싱 경기장에서 컴백을 알리는 특별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기 절정에서 누구도 하기 힘든 결심을 하고 훌쩍 해외로 떠났던 용기를 가진 서태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회복한 그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어렵다고 푸념하고 포기하고 한 숨 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고 변화를 모색해봅시다. 건물 경비원, 조지 소로스, 서태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좋은생각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닥쳐온 불행이 오히려 행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마음 속에 품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마련입니다. 반면 현재의 자리가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안주해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몇 년째 하던 일만 반복하게 되면 도전정신과 열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그러듭니다. 새로운 도전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변화 없이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무능하게 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전하는 자세,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이 사고하는 자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주하지 아니하고 변화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70년대에 봉제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사시던 사업가 분의 이야기 입니다. 봉제업은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업종인데 당시에는 우리 나라의 노동력이 경쟁력이 높았습니다. 경쟁국가와 노동력과 비교하여 숙련도는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쌌던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80년대 말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단순 근로자라 할 지라도 임금이 높아졌습니다. 반면 중국과 동남아의 싼 노동력에 의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의 봉제업은 사양산업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이 사업가 역시 경영환경이 바뀌면서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게 되고 이래저래 고전하던 차 1997년 말 IMF를 맞아 회사는 결국 부도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겨우 끼니를 이어가다 시피 하는 이 사업가는 주위사람 들에게 안타깝게 말합니다. “나도 한 때는 아주 잘 나갔었는데 데리고 있던 회사 직원이 돈을 가로채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라고.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아직도 감지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임금이 높아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을 때 사업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감지하여 다른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하였으면 어려움을 극복함은 물론 더 발전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예전에 사업이 잘 되던 것만 생각하고 안주하며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 였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불행이 우리 앞에 닥쳤을 때 우선은 닥쳐온 불행을 헤쳐 나가기가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닥쳐온 불행이 오히려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앞에 어려움이나 불행이 닥쳐올 때 뒤따라 올 행운과 축복을 기대하고 이겨내면 결국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나 스스로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려울 때 내게 닥쳐 오는 위기는 결코 위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신호입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펀드 매니저의 한 사람인 ‘조지 소로스’는1930년 항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상류 생활을 한 유태인 변호사 ‘티바다르 소로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그의 성공 밑바탕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생존의 본능 외에도 영국 이민 시절의 어려운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훗날 그는 “영국에서의 생활은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배고픔과 고난의 나날이었다. 오랜 세월 ‘소로스’는 새벽녘까지 부자들이 춤추고 술 마시던 ‘쿼그리노’의 웨어터로 일하며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에 이들이 남기고 간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그는 ‘런던 경제 스쿨(LSE)에 진학을 했으며 공부를 마친 후 월가(Wall street)로 진출했습니다. 어려운 고생 끝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세계증권 시장에서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리는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고생이 없이, 노력도 없이 처음부터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고통을 동반한 시련과 실패를 무릅쓰고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에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살을 애는 자기희생만이 성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기도 한 가수 서태지는 인기의 절정에 있을 때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 것입니다. 팬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지만 가수 서태지는 스스로 음악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정이 떨어지고 음악적 창의성이 부족해 짐을 느꼈습니다. 자신 만이 가진 음악적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많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을 뒤로 한 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며칠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가수 서태지가 돌아왔습니다. 많은 청소년 팬들이 떼를 지어 공항으로 나가 세시간 전부터 그의 입국을 기다리며 공항청사는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한 여학생은 “가수 서태지와 한 하늘 아래 사는 것, 서태지가 밟은 땅을 함께 밟으며 살 수 있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다”라고 그에 음악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표현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않으면 올림픽 팬싱 경기장에서 컴백을 알리는 특별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기 절정에서 누구도 하기 힘든 결심을 하고 훌쩍 해외로 떠났던 용기를 가진 서태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회복한 그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어렵다고 푸념하고 포기하고 한 숨 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고 변화를 모색해봅시다. 건물 경비원, 조지 소로스, 서태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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