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우리 영어교육이 가야할 길(따온 글)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6. 1. 19. 17:06
    정부가 2008년부터 초등학교 영어 교육을 1학년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3학년부터 시작한다. 주당 2 시간 수업이라니, 아주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이다. 그래도 그것은 영어 교육을 위한 실질적 걸음이어서, 무척 반갑다. 영어 교육에 소극적이었던 중앙 정부가 추진했다는 점에서 특히 반갑다.

    영어 캠프, 영어 마을, 영어 전용 지구처럼 영어 교육에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거의 다 지방자치 단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이 뽑으므로, 지방자치 단체장들은 주민들의 뜻에 이내 반응한다. 그들은 주민들이 영어 교육에 좋은 시설들을 바란다는 사실을 잘 읽는다.

반면에, 중앙 정부의 관리들은, 시민들의 뜻에 마음을 크게 쓰지 않고 대신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늘 고려한다. 민족주의적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살피고, 영어 교육을 위한 제도나 시설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언뜻 보기보다는 훨씬 큰 뜻을 지녔다. 문화의 한 부분이므로, 언어는 본질적으로 모방을 통해서 습득된다. 자연히, 우리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영어 교육의 핵심분이다.

    영어 캠프, 영어 마을, 영어 전용 지구, 영어 강의와 같은 조치들은 영어가 쓰이지 않는 사회에서 아쉬운 대로 그런 환경을 마련해주려는 시도들이다.

    그런 시도들이 지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그것들은 부분적 해결책들이므로, 그것들의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귀착점은 영어 공용이다. 우리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영어를 써야, 비로소 우리 학생들은 영어를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된 뒤에야, 우리 사회는 세계의 표준 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입는 엄청난 손해를 막을 수 있다.

    영어 공용을 시급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영어 격리’ 현상이다. 부유한 계층은 자식들에게 좋은 영어 교육을 시킨다. 영어권 국가들로의 단기 연수는 기본적 투자가 되었고 조기 유학도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계층의 자식들은 좋은 영어 교육을 받을 길이 없다. 그들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인 영어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어, 가난이 대를 잇게 된다.

    “영어는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배우면 된다”는 얘기가 흔히 들린다.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인 주장이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일자리들은 내국인들만 상대하는 일자리들보다 보수도 사회적 평가도 전망도 훨씬 낫다. 자연히,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직장들을 얻을 것이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영어를 배우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자식이 영어 때문에 좋은 일자리들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도의 천민 계급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도 영어를 배워 신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길을 달라고 시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곰곰 새겨야 한다.

     가난한 학생들도 어릴 적부터 둘레의 사람들로부터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영어 격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물론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일은 우리 시민들 사이에 합의가 나와야 가능하다. 영어 공용에 대한 시민들의 호의는 커지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시민들의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작다. 따라서 시민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조치들을 먼저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우리 사회는 해외 의존도가 유난히 높아서 외국인들의 투자와 관광은 무척 중요하다. 자연히, 외국인들의 투자와 관광을 돕는 조치들은 어차피 마련해야 한다.

     법에서 식당의 식단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국문과 영문으로 함께 밝히는 일은 당장 필요하다. 영어 지상파 방송국은 손쉬우면서도 효과가 클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한류(韓流)”로 불리는 우리 대중문화의 해외 전파도 도울 것이다.

 

- 조선일보2006년 1월 15일자 시론에 게제된 소설가 복거일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