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화단에 꽃심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6. 5. 19. 21:43

<화단에 꽃심기>


   어릴적 살던 시골 집에 예쁜 화단이 있었다. 난초도 있었고 장미도 있었고 이름모를 예쁜 꽃들이 가득 심겨 있었다. 크고 작은 돌들로 화단의 경계도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고. 물론 젊은 시절 부모님께서 가꾸신 것이다. 봄이면 라일락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왔으며 야생 난초에서는 노오란 꽃이 참 아름다왔다. 어린 시절 화단에서 자라나는 예쁜 꽃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감수성을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부모님이 아파트의 1층으로 이사를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앞쪽에 화단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에는 어릴 적 살던 시골집의 정원을 생각하며 꽃모종 몇을 사서 심었다. 배고니아, 사루비아, 패랭이꽃 바베나. 심을 때도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재미가 있더니 심어놓고 바라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일 때문에 주중에는 주로 서울서 생활을 하지만 주말엔 연로하신 부모님 시중도 들어 드릴겸 부모님 계신 시골의 한 아파트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 내려올 때마다 지난 번 심어 놓은 꽃을 보는 기쁨이 여간 아니다. 삶 가운데 누리는 기쁨과 축복이 그리 먼데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싶다. 꽃을 심고 그 꽃을 바라보고 꽃과 대화를 나누고 이런 것들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약 열포기 정도의 고추도 심었는데 얼마 있지 않으면 고추따는 재미 또한 쏠쏠하리라.
삶에 있어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찾지 못할 따름이다.


    KTX 5월호 사보에 실린 글이다. ‘84세의 박정자 할머니는 1923년 한글 점자 창안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로 태어나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2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다 결혼,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그러다 환갑이 되던 해, 수채화 공모전으로 화가로 등단했다. 총 6회 입선을 하고 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특기는 빛나고 화려한 꽃 그림. 누구도 따라하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 한다.

   박 할머니가 그렇게 꽃을 그린 이유는 단순했다. 다섯 아이들을 잘 키워 내는 것이 중요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었기 때문이다. 모델이 되어준 것은 집 뒤뜰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꽃, 꽃밭, 자연이었다.

   수채화가인 딸 유명예 관장(신설동 진흥갤러리와 춘천 예예 갤러리 원장)은 어머니 박정자 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언제나 끊임없는 호기심과 생명에 대한 찬가, 긍정의 힘으로 꽃을, 사람을, 세상을 대해요. 그래서 아무리 시시한 꽃 한송이라도 대단하게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아름답게 보듬으며 말없이 사랑과 헌신을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라일락 향과 아카시아 향 가득한 봄날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외쳐 본다.

 

  <2006년 5월 19일 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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