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낚시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6. 5. 23. 15:22

  낚시는 나와 별 인연이 없었다.

  주위 분들이 낚시의 재미를 이야기 할 때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막상 가려고 하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에는 낚시는 시간만 죽이는 행위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낚시대를 드리운채 하루종일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했다.

 

  오랜만에 상경한 친구 창운이가 닥아오는 주말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낚시를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을 때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 쳤다. 식사하고 술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낚시대를 드리우고 밤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경북 경산시 용성에 위치한 저수지는 어제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오후 2시경 대를 펼치고 시작한 낚시는 밤을 꼬박새우고 다음날 아침 10시에 끝이 났다. 14대의 낚시대를 펼치고 20시간의 노동끝에 얻어낸 수확이라고는 붕어 한마리가 전부. 필시 그 한마리도 네 명의 사내들이 찌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측은히 여겨 제 한몸 보시하는 심정으로 덥석 물어준 것일게다. 낚시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확이지만 학교 졸업 이후 간만에 죽마고우가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했다는 의미가 컸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자연과 내가 하나 된 체험. 저수지 자체가 산들로 둘러쌓여 고요함이 있었고 주변의 과수원과 텃밭은 정감을 더했다. 물 가까이 몸을 뉘어 한참 동안 수면을 바라보니 내가 물이 되기도 하고 물이 내가 되기도 한다. 물속을 노니는 붕어도 되었다.  

   하나 둘 별빛이 보이더니 밤이 깊어 갈 수록 더 또렷한 별빛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자정을 넘기고 한두시간 지났을까 눈앞에 펼쳐진 산 등성이로 노오란 물체가 끝모양만 뽀족이 내어 놓는다. 저게 무얼까 하고 한참을 쳐다 보고 있었다.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하현달이다. 히뿌연 달빛에 비쳐진 산등성이의 그림자가 물위에 있다. 사춘기 마냥 가슴이 두근거린다.


  날이 밝을 무렵 라면을 끓여 소주 몇잔과 함께 해장을 했다. 지난 밤 달이 얼굴 내민 그 자리로 이번에는 아침 해가 떠오른다. 해가 모습을 나타내자 풀잎에 젖은 밤이슬이 금새 마르기 시작한다. 아침에 보는 저수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밤새 울어제친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아침까지 여전하고. 아리장직한 산에 둘러쌓인 저수지와 주변 경관은 수줍은 새식시 모습이다.  
 

  오전 10시 경 주섬주섬 낙시대를 챙긴 오십대 사내 네명은 한장군축제의 고장 자인으로 나왔다. 밤새 함께 했지만 헤어지기가 아쉽다. 점심은 다소 이른 시간이긴 이지만 한우고기와 염소탕이 유명한 고장 자인을 그냥 지나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핑계를 대며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처음 맛보는 염소탕이 괜찮다. 육계장 맛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염소탕으로 끼니를 때운 뒤 아쉬움을 남긴채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잘 담근 장맛같은 친구와의 햄복한 주말이었다.

 

  <2006년 5월 21일 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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