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에서는 미국이 메달 순위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 선수단 중 흑인(African American)의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원인은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는 그들이 헝그리 정신을 가졌다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체격조건이 월등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수의 흑인들은 백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궁핍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보통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이라는 점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가난과 차별대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인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가 체육분야 입니다. 이 분야는 체력과 재능이 있고 열정과 끈기만 있으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많은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올림픽무대에도 서고 또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등 각종 스포츠 분야에서 멋진 활약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을 벌어들입니다.
시드니 올림픽 축구종목에서는 남미와 유럽의 강호들을 제치고 아프리카의 카메룬이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못사는 나라에서 축구공 하나만으로 뛰고 달린 결과 유망한 많은 선수들이 축구의 본고장 유럽무대로 진출을 하였고,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선수들로 구성된 카메룬팀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축구이기에 그들은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축구를 즐깁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우승한 카메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번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10위를 목표로 하였으나 12위를 하여 다소 실망스럽긴 하지만 선전을 펼친 한국선수단의 경우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많습니다.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안겨준 사격의 강초연 선수나 양궁의 윤미진, 펜싱의 김영호등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보다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던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헝그리 정신을 머리에, 가슴에 심어왔던 것입니다.
헝그리 정신은 문자 그대로 배고픔을 참고 이겨내겠다는 마음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으면서도 내가 자라서는 이러한 한스러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랄 할 수 있습니다. 혹 공부할 돈이 없어 공부는 하지 못하지만 운동이라도 해서 세계 최고가 되어 나라의 명예를 빛내고 돈도 벌겠다는 마음이 헝그리 정신입니다. 이 헝그리 정신은 자라면서 어려움을 당하는 중에 생겨납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고픔을 당하면서 내가 자라서는 지긋지긋한 배고픔만은 면하겠다는 다짐이 스스로 몸에 배는 것입니다. 또한 내 후손에게 만큼은 배고픔의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쌓이고 쌓여 헝그리 정신이 된 것입니다. 또한 어려운 환경에서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 가운데 어지간한 어려움은 이겨내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배고픔을 참고 이겨내면서 또는 남들처럼 돈을 쓰고 싶을 때 마음대로 써 보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어지간한 어려움쯤은 능히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역성은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힘든 고뇌도 능히 참고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헝그리 정신을 가진 사람을 선호합니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면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악착같이 달라붙어 끝장을 보는 경향이 있고 어지간한 어려움도 능히 극복해 내며 목표한 것을 이루어 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헝그리 정신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달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은 헝그리 정신을 갖게 하는 양약 같은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군을 제대한 후 복학을 하여 대학 3년에 다닐 때 입니다. 그때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혼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취를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밥 한 그릇과 간장 혹은 반찬 한가지만으로 끼니를 때웠던 경험을 약 1년간 경험하였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필자에게 아주 유익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분으로 지금도 식사 시 반찬이 한가지만 있어도 맛이 있고 음식을 먹을 때 마다 그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간장하나로 밥 한끼 먹던 때를 생각하면 김치 한가지로 식사를 하더라도 맛이 있고 감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황영조 선수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입니다. 황선수의 어머니가 시장바닥에서 물건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에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는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달리고 달려 올림픽 무대에서 손기정 선수 이후 두 번째의 월계관을 쓴 ‘몬주익’(바로셀로나 몬주익경기장의 이름에서 따옴)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찢어지는 가난이 그로 하여금 이를 악물고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필자는 어제(10월 3일) 문화일보가 주최한 제 2회 통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 완주를 하였습니다. 지난해 11월 하프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해 본 경험은 있지만 풀코스는 한번도 달려본 적이 없어 긴장도 되고 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한번 도전장을 내어 보았습니다. 처음 20킬로 지점까지는 지난번 달려본 경험도 있고 하여 1시간 40분대의 비교적 좋은 기록으로 큰 어려움 없이 달렸습니다. 그러나 약 25킬로미터를 지나는 지점부터는 지치기 시작을 했고 발바닥에 물집까지 잡혀 힘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만 끝까지 달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한 끝에 결승점인 임진각에 도착했습니다. 달리면서 인생도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20키로 지점까지는 수월했으나 20킬로를 지나며 35키로 지점까지는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35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마음은 달리고 싶은데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고 허리까지 아프더군요. 아침에 달리게 되면 30분 이내 5킬로미터는 가벼운데 마지막 약 7.2킬로 미터는 체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더군요. 어쨌든 끝까지 완주하고 나니 내가 해내었구나 하는 자부심이 생기고 하루가 지난 오늘 까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내었다는 만족감과 자신감이 새록새록 솟아 납니다. 물론 다리가 무겁고 걷기가 약간은 거북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 인생도 쉬운 때도 힘들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보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제가 달리기를 하여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삶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변화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살기가 쉬운 것이 우리 인생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매너리즘과 컴포트 죤에서 벗어난 삶은 사는 상징적인 의미로 마라톤을 뛰겠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제 첫번째 저서인 ‘37세 MBA도전’에 그러한 내용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0년 10월 4일에 쓴 글을 정리, 보관 차원에서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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