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하면서 매일 만나는 유도인이 계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른은 아침 저녁 열심히 운동을 하신다. 자전거 타기는 물론이고 쪼그려 뛰기, 업어치기, 낙법 등 유도를 기본으로 한 응용동작도 하신다. 메트를 바닥에 여러 개 깔고 옆으로 뒹구는 동작을 한다거나, 한 손으로 기둥을 잡고 다른 손을 귀 위,아래로 움직이며 옆구리 운동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다. 하시는 모습이 워낙 독특하며 어떻게 보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혹 하시는 운동이 택견과 같은 전래운동인가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어르신께서는 웃으시며 ‘기본동작에서 조금 발전시켜 새롭게 해보는 것’이라며 명함을 내미신다. 명함에는 한국유도고단자협회 부회장/7단으로 나와 있다. 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분이라 운동에 대한 자부심 또한 많으시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하셨고 열심히 인생을 사신 어른이신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니 개인적으로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오늘 아침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러닝머신을 타다 옆에 계신 어르신께 “수건을 좀 집어 줄 수 없겠느냐”고 예를 갖추어 부탁을 드렸다. 조용히 옆에 놓인 수건을 전달하신 어른은 “오늘 젊은이는 내게 차라도 사야 한다”고 농담을 하셨다. 그러고는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시더니 “만일 내 후배들이 있는데서 나보고 수건을 갖다 달라고 했으면 저 친구는 오늘 맞아 죽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무심코 수건을 집어주셨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많이 언짢으셨던 것이다. “수건이 필요하면 타던 러닝머신에서 내려서 수건을 하나 집어가면 될 것이지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에게 수건 집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장에서 다시 어른을 뵈었을 때도 노여움이 가시지 않으셨는지 “버릇없는 놈에게 당신이 나에게 차라도 사야 한다며 농담으로 말했는데 내 후배나 후배의 후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 친구는 그냥 두지 않았을 거야” 라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유도 도장에 가면 어른은 분명 하늘 같은 선배로 대접 받을 것이 당연하다. 운동을 하는 선배로 경험으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또 인격적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서로의 경험과 직업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침 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끼리 “미안하지만 저기 수건을 좀 집어주실 수 없겠는지요?”하는 부탁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운동을 하는 곳에서는 어쩌면 일대 일의 관계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유도인으로 평생을 보내신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젊은 친구가 수건을 달라고 하는 것이 결례일 수 있다. 그분의 눈에는 헬스클럽이 일종의 도장 같은 곳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어떤 일을 했으며, 가정환경이나 학력 배경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수건을 집어달라’는 평범한 부탁을 했다가 젊은 놈이 버릇없다는 욕을 듣게 되면 ‘일진이 나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서열 따지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일 관련 모임이면 현직 서열을 기준으로, 학교관련 모임이면 학번을 따져, 회사는 입사년도, 이도 저도 아니면 나이를 조사해서라도 일렬종대로 세운다. 여기에 따라 호칭이 정해지고 누가 반말을 하고 존대말을 할 것인지 정해진다. 여기서 어떤 기준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 신세가 된다.
하지만 현직이 아무리 짱짱하다 한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잘 나가는 조직에 속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일대 일의 관계에서 존중하고 인정하며 어울려 살아갈 때 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
나도 더 나이가 들면 괜스레 후배들로부터 대접 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부터 계급장 떼는 연습을 하면 그런 마음은 덜해지리라! 내가 무슨 일을 하였건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남에게 도움을 주고, 힘을 주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존경 받는 삶’이 되리라 믿는다.
<2004/7/6 이택희>
'Desire·Vision·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countability(책임감) (0) | 2004.07.12 |
---|---|
조직문화 (0) | 2004.07.08 |
스트레스 해소를위한 10가지 방법 (0) | 2004.07.06 |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0) | 2004.06.08 |
잡아놓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0) | 2004.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