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40분 경 일어나니 아버님은 벌써 산에 올라가셨다.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아들이 5시가 넘도록 자고 있어 혼자서라도 길을 나서신 것이다. 나는 나대로 일어나는 시간이 있으니(5시 20분기상, 6시 40분부터 8시10분까지 운동) 아버님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휴일엔 좀 느긋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보훈병원 뒤쪽으로 차를 세우고 상인동 수변공원의 저수지 못 뚝을 따라 걸었다. 약 오백미터 거리. 뚝 양 옆으로 들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있다. 풀벌레소리 요란하고 이른 아침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해는 서서히 동쪽으로 떠오르고 풀에 젖은 이슬냄새, 저수지의 물 냄새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각산동 뒤쪽 못으로 가끔 떼지어 놀러 다녔다. 친구 서정대의 포도밭, 복숭아 밭이 못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목사가 된 이재영 선배의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하고…) 느린 쉼호흡을 하며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르지도 않고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지도 않아, 능선을 따라 오르기만 하면 되는 전혀 어려울 것이 없는 산이다. 산책을 하기에 적당한 동네 뒷산으로 보면 된다.
소나무 위에 지어진 벌집을 발견하다. 제법 큰 벌들이 벌집에 붙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댄다. 꿀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주 가까이서 벌집을 대하는 건 처음이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집을 지어 불안해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벌집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다시 말해 자신들을 해하지만 않으면 사람을 공격하는 법은 없다. 곰은 꿀을 훔쳐 먹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면 벌들은 떼거리로 몰려들어 곰을 공격한다. 하지만 곰은 벌들의 공격쯤이야 꿈쩍도 않는다. 허나 사람이 야생벌집을 잘 못 건드리면 죽는 수가 있다. 한참 동안 가만히 벌집을 올려다보았다. 벌은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질서 있는 사회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오묘한 자연의 법칙!
길 옆에 싸리나무도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싸리나무를 이용하여 울타리도 만들고 빗자루(싸리비)도 만들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던 그때가 그립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하였지만 인간적인 정은 지금보다 더하였으리! 싸리나무을 보면 외로움이 묻어있다. 잔가지가 많아서 일까?
높은 산이건 낮은 산이건 간에 산은 오를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다. 초입에서는 잘 보이지 풍경들이 오를수록 아름답고 아련하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보이는 주변의 산줄기 산등성이가 더욱 선명하고 푸르르다. 멀리 보이는 수변공원 인근 부락과 멀리 보이는 시가지가 막 아침잠을 깨어나고 있다. 오른쪽 옆으로는 비슬산 자락이 펼쳐지고. 개망초, 닭의장풀이 군데군데 있다. 이슬에 젖은 풀들은 아침햇살을 맞아 기지개를 펴고… 어쩌면 오래 전 잠에서 깨어나 떠오르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산등성이 옆에 빨간 플라스틱으로 된 표주박 두개가 걸려있다 가까이 가보니 고인 물에 올챙이 여러 마리가 헤엄을 친다. 표주박이 걸려있는 걸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수라고 떠먹은 물인가 본데…개구리가 알을 낳았나 보다. 지역의 약수터 16군데 중 12군데가 오염물질이 과다 포함되어있어 식수로는 적합치 않다고 했다. 약수라고 해서 무조건 마실 건 절대로 아니다.
아버님과 지난번 갔던 지점까지 가서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돌아내려 오다. 어른들이 기다리실지도 모를 일. 1시간 30분가량의 산책이었지만 좋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벌집과 싸리나무, 약수터의 올챙이, 각종 들풀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움직이면, 관심을 가지고 보면 보이는 것이 참으로 많다. 최순우 선생께서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하는 일로 평생을 사셨다. 관찰하고 꿰뚫어 보는 능력을 한껏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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