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H선배와의 대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9. 20. 11:05
 <H선배와의 대화>

 

3개월 전 선배가 시작한 광장시장의 포목점 이레직물에서 H선배와 오랜만에 장시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연락도 않고 훌쩍 들이닥쳤다. 선배는 언제나 그 모습으로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혼자 앉아 조용히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선배는 일년 전 55세의 나이로 정년 퇴임할 때 목동에 4억 가량의 아파트 한 채, 양평에 땅 1000평, 시세 3억 정도인 동대문시장에 상가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선배의 꾸준한 직장생활, 주식투자의 성공(엄밀히 말하면 회사에서 발행하는 우리사주를 샀다가 회사를 상장하여 주기가 높을 때 팔아 차익을 남긴 경우), 형수가 선생님을 하면서 돈을 버는 등 두 내외가 열심히 노력하여 일군 결실이다. 선배는 회사를 그만 둘 시기에 맞추어 월 수입 1000만원을 만들려고 노력하였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명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한 달에 500만원 가량이 수입이 발생하던 청해수산이라는 식당을 처분한 후로는 수입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평소 선배의 삶의 방식을 약간 소개하면 이렇다. 선배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또 고정수입도 있지만 본인을 위해 쓰는 것은 극도로 자제한다. 몸에 밴 절약정신으로 7만원 이상의 양복은 절대 입지 않는다. 가족과의 외식도 일체 없다. 아마 외식이라고 해본 것은 본인이 투자한 식당 청해수산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렇게 절약하여 꼭 써야 할 곳에 돈을 쓴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있지 않고 많은 돈을 한꺼번에 주기도 하고, 필요한 곳에 많은 돈을 성큼 기부한다. 교회에 십일조 헌금은 물론 건축헌금도 적지 않게 한다. 형편이 예전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포항의 한 양로원 시설을 보강하라고 500만원을 보내주었으며 탈북자 가족을 돕는데도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선배가 포목점을 하게 된 계기는 같은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실패는 없을 것이니 한번 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에 스스로 기도하고 생각한 끝에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매장에 진열할 물건도 스스로 구입하지 않고 소개해 주시는 분의 공장에 쌓아둔 물건을 매장에 내어다 놓았다. 그러다 보니 적은 비용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임대료 관리비 등 약 100만원의 경비가 들어가고 있으나 선배는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기도하고 시작한 것이라 하나님이 망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선배는 이곳에서 돈을 벌면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쓸 것이라고 한다. 선배가 북한 동포의 굶주린 실정을 이야기 하는 동안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간간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북한 동포를 형제로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진하게 배어난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힘들게 번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거나 북한 동포를 돕는데 쓴다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 대학에 다니는 아들, 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북한에서 쓰여지고 있는 성경책을 볼 수 있었다. 성경의 표현이 상당히 국내에서 읽히는 성경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북한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다 보니 그러했으리라.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북한 땅에까지 성경이 들어갈 수 있었다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이다. 북한 사회도 이제 더 이상 주민들을 막무가네로 통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선배의 예상으로는 10년 이내에 통일이 가능하지도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국내의 명문 K대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B컨설팅 그룹에서 일하면서 K대학 경영대학원까지 마친 엘리트중의 엘리트이다. 한국 사람으로 만큼 고급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캐나다의 B컨설팅회사 매니저로 발탁되어 아틀랜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런 유능한 사람이 어느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했다. 워낙 공부하는데 재능이 있고 또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라 짧은 기간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H씨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회사의 매니저를 그만두고 전도사가 되었다. 전도사가 된 후로는 북한 선교를 한다며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전 지역을 자주 드나들었다. 공식적으로 선교목적으로의 입국은 불가능하고 컴퓨터를 가르치는 컴퓨터 교사로 북한을 들어갔다. 북한에서 조심스럽게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H선배와의 만남이 늘 그렇지만 이날의 대화 역시 참으로 유익했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철저한 자린고비 정신으로, 남을 돕는 일에는 넉넉함이 있는 넓은 가슴으로 앞장서는 선배의 삶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운다.

 <2004/9/10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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