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노랗다.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멍하기만 하다. 한참동안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다.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 아 아버님 우리 아버님.
어떻게 아버님이 위암 말기 환자일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건강하시고 쾌활하셨는데. 아무런 낌새도 발견하지 못하셨단말인가. 아침마다 운동을 나가시면 그 사실이 기뻐 전화를 드릴 적마다 운동을 다녀오셨는지 묻곤했다. 운동을 다녀오셨는지 물을 게 아니라 위 내시경 검사를 하셨는지 물었어야 했다.
집안에 암 내력이 있거나 암 일 가능이 있는 사람은 내시경 검사만 육개월에 한번씩 하여도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지 않던가.
특별히 위암은 그렇다고 했다. 오년 전이었던가 위암이 의심되어 짧은 시간동안 내시경검사를 여러차례 수차례 받기도 하셨다. 이때는 분명 암이 아니라 용종 몇개를 제거해 내었고 더 이상 염려할 필료은 없다고 했다. 육개월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만 하자고 했다. 경북대 병원 내과의 조모 교수였던가. 그분께 가서 육개월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만 했던들 오늘 이런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가까이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큰 아들 머리에 튜마가 있다는 소식에 온통 여기에만 신경을 써서 였으리라. 막내도 교통사고 휴휴증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아픔은 아픔도 아니란 생각을 하지시 않으셨을까.
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도무지 없는 것일까. 만사 제치고 달려가 아버님 얼굴을 뵈어야겠다.
아 아버님 아버님.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떠나있어서 그랬습니다. 제가 가까이 있었던 들 소화가 안됀다고 하실 때 당장 병원으로 가서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말씀 드렸을 터인데요. 제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말씀드려 당신의 아픔은 아픔도 아니게 여기셔서 그랬습니다. 자신의 아픔쯤안 아무것도 아닌양 여기시도록 이 불효가 착각을 일으켜 드렸습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운동다녀오셨습니까?”라고 여쭙지 아니하고 일년에 한두번 “위 내시경검사 하셨습니까?”라고 여쭙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님의 마지막 생일도 잊어버린 불효였습니다. 달력에 아버님 생신이라고 표시를 해두고선 달력한번 챙겨보지 않았습니다. 아 어찌 이러고도 큰 아들이라 말씀드릴 수 있나요. 아버님께서 괜찮다고 말씀하셨던 선글라스가 있었습니다. 말씀 하시자 마자 가지시라며 그냥 드렸었으면 되었을 터인데 유리에 도수를 집어 넣은 것이라고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내일 중 사서 부쳐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당신은 우리 집안의 기둥이셨습니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당신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고 꿋꿋히 서 계셨습니다. 사십대 후반 당신께서 당신이 가지고 계셨던 땅에 집을 지으셨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여 더 멋있게 짓지 않으시냐고 따지기만 했었습니다. 당신 통장의 잔고가 점점 줄어들어 아이들 교육비에다 막내 바이올린 레슨비로 나가야 될 돈이 많은 건 생각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난을 퍼붇는 자식 앞에 제대로 내색도 않으시고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아버님의 그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당신이 언제 제일 기쁘고 좋았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통지를 받았을 때와 책을 펴내었을 때라고 서슴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는 자식 잘되는 것 보고 싶은 소망만 있으셨던 게지요.
지난번 캐나다에 오셨을 때 함께 뉴욕을 여행하며 행복해 했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지요. 참으로 어린 아이 같으셨습니다. 뉴욕맨하탄의 한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으로 건배를 하면서 월드시리즈 양키즈와 필라델피아 필리즈의 경기를 보면서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욕과 토론토 여행을 마치신 후 당신의 삶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일년 삼개월 전 한국에 갔을 때 당신은 비교적 여윈 모습이셨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줄로 알았습니다. 다리에 뭉쳐진 근육만 보면서 당신은 타고난 건강한 분이라 여겼습니다. 그때 갔을 때 여의신 모습을 확인한 후 병원을 모시고 가서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권유만 드렸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겁니다. 나는 나의 약함만 보았지 당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는 이토록 둔감했습니다. 이미 그때 당신의 몸 속엔 암 세포가 자라고 있었던 게지요. 캐나다로 돌아오면서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의 여윈몸을 껴앉으며 당장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셔야 한다고 졸라대며 말씀 드려야 했습니다.
저는 제 건강 생각만 했고 막 캐나다에 벌려놓은 작은 사업체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당신 마음 속엔 아들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만 바라는 그 마음 뿐이시지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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