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황금 천냥이 자식 교육보다 못하다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1. 8. 5. 11:05

   황금 천냥이 자식 교육보다 못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가장 크고 좋은 유산은 바른 교육과 공부시키는 일이다. 목표는 높게, 기대는 많이 하라. 그러면 아이들은 성장한다.’

어떤 분이 벽에 써붙이고 교훈을 삼고 있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백번 옳은 말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아이들을 캐나다에 보내 놓고 돈을 많이 썼다. 돈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에 투자했다. 한국에서 받는 월급으로 한 가족이 생활하기도 바빴다. 아이들과 아내는 캐나다에 있고 나는 한국에 있었기에 두 곳에서 지출이 일어났다. 이런 형편이었기에 따로 돈을 모은다는 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캐나다에서는 공교육 시스템에 의지하였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과외로 시켰다. 그렇다고 특별히 공부하라고 다그친 일은 없었다. 자발적으로 하게 두었고 나름 기준을 두어 90점을 넘길 것을 기대하였다.

현재 큰 딸아이는 의대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 딸은 간호학을 전공하는 졸업반 학생이다. 졸업후 큰 아이는 미국 의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의사로 일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간호사로 일하게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약 3년 반을 의대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데 큰 아이의 학비와 기숙사비 등 전체 비용이 약 삼억원 가량이 들 예정이다. 형편상 삼억은 대단히 큰 돈이나 기쁜 마음으로 교육을 시키고자 한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교육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 막내 여동생을 통해 경험하였다. 막내 여동생은 나와 13살 터울로 늦둥이였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치 못함에도 나는 동생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도록 부모님꼐 건의했다. 부모님은 아이에게 음악을 시킬 돈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속히 집안을 망하게 하려면 도박을 하고 서서히 망하게 하려면 음악공부를 시킨다는 말도 못들어 보았느냐고 다그치셨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꺽지 않았고 아버님은 마지 못해 허락하셨다.

막내 동생이 9살 때부터 시작하여 근 삼십세가 되도록 공부를 하였으니 이십년 가까이 돈을 쓴 셈이다. 하지만 동생은 현재 중견 음악인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고 나름 레슨도 하고 있다. 동생은 연주자로써 또 가르치는 선생으로써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나할까. 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찔하다. 바이올린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행복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들인 돈도 적지 않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공부시킨 만큼 회수하고 남음이 있지 않나 싶다. 투자대비효과 측면에서 보아서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의 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공부가 끝난 후 부모가 자신의 교육을 위해 쓴 돈은 반드시 갚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사실 딸아이는 본인 힘으로 의대 대학원 공부를 하기를 원했다. 의과대학 합격통지서를 가져가자 은행에서는 아이의 이름으로 이억 이천만원까지는 대출해주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프라임 레이트의 낮은 금리로 말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아이가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아빠가 보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증인의 자격이 되려면 년 오천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음을 증명해야했다. 한국같으면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캐나다에서는 쉽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일을 한 기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빠가 보증을 서 줄 수 없게 되자 은행에서 딸아이의 이름으로 돈을 빌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딸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넉넉한 집안의 자녀라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하므로써 학생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부모가 능력이 되더라도 자녀는 자녀요 부모는 부모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만들어 학비와 기타 비용을 대어 줄 터이니 공부가 끝난 뒤에 갚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이를 설득했다. 나중에는 은행의 담당 부장까지 나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버님이 보증할 능력은 되지 않지만 학비를 조달할 능력은 되니 한편으로는 감사하지 않느냐며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하였다. 가까스로 아이를 설득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투자중 가장 훌륭한 투자가 자녀를 위한 투자가 아닐까. 황금천냥이 자식교육보다 못하다는 말은 백 번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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