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카르페 디엠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10. 24. 06:36

  날씨가 너무도 좋아 그냥 있기가 뭐했다. 산책이라도 했으면 싶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아내를 종용하여 맥마이클 갤러리로 향했다. 클라인버그의 험버 리버 트레일 코스를 걷다. 따로 할 일이 있었지만 뒤로 좀 미루면 어떠랴. 석양을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산책길을 걷는 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었다. 저녁 숲의 고혹한 향이 감성을 자극한다. 어릴 적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던 시골 길을 걸을 때 맡던 냄새이다. 늦가을 해 질 녘 숲이 선사하는 독특한 향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건 신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선물이다. 카르페 디엠.

최근 이웃으로 이사를 와 입주한 가정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전화를 해왔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차를 몰아 초대받은 가정의 식탁에 앉았다. 라빈이 특별히 멋진 집. 숲과 가까이 붙은 집은 혼자서 즐기기에 아까울 지경이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단풍잎과 어우러진 가을의 들풀. 자연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초대한 가정의 장성한 아들이 사다 놓은 차를 마시다. 차의 이름은‘The Republic of Tea.’가을 빛깔과 어울리는 차 한 잔이 때론 삶의 전부인 양 여겨질 때가 있다. 

은퇴 후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노후를 맞으면 그럴 수도 있을 터이다. 경제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이지만 노후에 즐길 수 있는,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꼭 골프가 아니더라도 할 것이 많지 않을까. 글쓰기도 좋을 터이고, 산책도 좋다.

친구가 빌려준 책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야야코의 계로록, 도서출판 리수)’에서 저자 '소노 아야코'는 이렇게 말한다.

외로움은 노인에게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늙어서도 여전히 자식이 독립하지 않았거나, 금전적으로 고통을 겪든가 하는 사람은 이 외로움이라는 고통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외로움이란 축복받은 노인에게 부과되는 특별세라고 일단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누군가 말상대를 해주거나, 어딘가 데리고 가주거나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려 하는 노인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해결도 되지 않는다. 매일 함께 놀아주거나, 말동무를 해줄 사람을 늘 곁에 두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정이 아닌 한 불가능하기 떄문이다.

어떤 노인이든 목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살아가는 즐거움이란 스스로가 발견할 수밖에 없다.

내 경우 40세가 다 되어 배운 도자기 공예가 혹시 잘만 하면 노후의 즐거움을 지탱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자기 만드는 것 또한 소설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이것으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절대로 만족할 만한 것을 일평생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그것은 내가 도자기 공예를 시작했기 때문이란 뜻만은 아니다. 거장도 거장 나름의 똑같은 운명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일에 도전하는 어리석음이란.

자식을 두 명이나 잃은 부인이있었다. 천애고독(天涯孤獨)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도 도자기 굽는 일에 아주 열심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느 정도 훌륭한 작품을 구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 너무 바빠요.”이 말을 들은 한 부인이 말했다.

저분은 자식을 잃고 나서 흥미의 대상을 도자기 굽는 일로 용케도 참 잘 바꿨네요."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 부인은 인간에 대해 별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도자기로 바꿔치기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생명체를 흙 부스러기로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 단지 자식을 키우는 것 외의 다양한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애정도 인간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마작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들기에는 어딘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웬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즐기는 노인의 마작은 결코 해롭지 않다.(저금한 돈을 무한정 탕진해버리는 경우는 제외하고). 오히려 마작 등을 하는 것은 머리의 훈련이 될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화제나 기분을 이해할 수 있게도 해준다.

젊었을 때 별로 놀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는 노는 것을 죄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이런 유희(골프, 바둑, 장기, 파칭코, 트럼프, 화투, 댄스 등)는 의식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고, 혼자서 공부하거나 독서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은 노후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독서나 사색의 습관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아마추어로서의 학문이나 지식, 그리고 기술 등은 어떤 것이든 모두가 노후를 즐겁게 따분하지 않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고독을 피하는 방법도 스스로의 노력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둘 다 취미가 달랐다. 나는 50대부터 식물 재배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한 일에 흥미가 없었다. 남편은 완전한 도시파로, 현재는 언젠가 손자를 위해서 세계사를 써봐야지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노년이란 언젠가는 몸이 말을 안 듣게 된다. 눈이 안 보이게 되고, 귀가 안 들리게 되며, 몸의 한 부분을 쓸 수 없게도 된다. 머리의 회전도 나빠지게 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눈이 좋은 사람도 30대 후반부터는 노안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한 일들이 당연히 일어날 것을 감안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언제까지나 눈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사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항상 몸이 건강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후에는 농사를 지어야지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눈이 나빠졌을 때, 귀가 안 들리게 되었을 때, 걸을 수없게 되었을 때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일이다. 그것은 악()도 아니며 죄()도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으로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먹는 습관을 초로(初老)의 나이에 익혀두면 편리할 것이다." 

<오랫 동안 책을 빌려 주고도 빌려간 사람의 마음이 상할까 봐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붕우(朋友) 홍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빌린 것조차 잊어버리는 우매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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