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토론토에서 한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선배님은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운영하다 93년 11월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캐나다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당시 영 스트리트와 핀치 인근에 제법 큰 공간을 임대하여 컴퓨터 교육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스틸과 베더스트 유대인 동네 아담한 집에서 사셨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흰색 그랜드 피아노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형수님을 비롯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세 따님과 오손도손 사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따님 중 한 명은 피아노를 다른 한 명은 첼로를 막내 따님은 바이올린을 배웠지요. 선배님은 당시 도요타 회사의 날렵한 밴으로 첼로를 싣고 오가곤 했습니다. 따님들의 레슨이나 연주 시 픽업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끔 트리오로 연주를 하기도 했었는데 보기에 무척 좋았습니다.
선배님은 삶을 대하는 자세가 긍정적이며 늘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안 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해주셨지요.
자녀들을 교육할 때에도 윽박지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찾아가도록 가이드했습니다. 특히 큰 딸 지연(에리카)이는 의사가 되겠다고 어릴 적부터 확고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둘째 정아와 막내 정림이도 토론토 대학을 다니며 스스로 공부에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어릴 적에는 집 근처의 프렌치 학교에 다녔습니다만) 내외분께서 딸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큰딸 지연(79년 생) 양은 토론토 대학에서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미국 펜실베니아(Pennsylvania College of Optometry at Salus University)에서 의사공부를 마친 후 안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밴쿠버에서 개업하여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연 양은 오는 3월 함께 일하는 5살 연하의 안과의사(부모님은 대만 출신)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인 정아(81년생)양은 토론토 대학에서 Business를 전공한 후 CMA(Certified Management Acountants)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바이엘 약품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지요. 정아 양의 남편은 변호사(부친은 중국본토 출신으로 인도대사를 역임하고 캐나다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바 있음)로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인 정림(83년생)양은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로 맨유라이프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로 일합니다. 아시아 시장의 주식을 사고파는 일에 관여하고 있지요. 정림 양의 남편 역시 CFA로 일하는 홍콩계 중국인입니다. 정림 양은 어릴 적부터 RCM의 여선생님께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할머니가 되신 선생님과 지금도 교류 중입니다. 가끔 선생님과 자선연주를 하곤 합니다.
선배님 내외분은 여행을 즐기십니다. 시간만 나면 캐나다와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다니시지요. 짧게는 한 주 대개는 두세 주일 시간을 내어 자동차로 여행을 다니곤 합니다. 특별히 호텔을 예약하거나 하지 않고 운전을 하다 날이 저물기 전 적당한 호텔이 있으면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 근처의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저녁을 즐기는 스타일이지요.
선배님께서는 절대 자녀로부터 무엇을 되받으려고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짐이 되는 부모가 되어서야 쓰겠느냐는 것이지요. 그 대신 자녀들에게 선을 분명히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대학공부는 시켜주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도록 선을 긋는 등 말입니다.
선배님 자신이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님께서는 선배님을 불러 세 가지를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녀의 머리는 엄마를 닮는다고 하니 결혼을 할 때 여자의 머리를 보아야 한다는 것, 둘째는 자기 일을 알아서 하되 그 일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결과는 자신이 책임을 질 것, 셋째는 대학공부까지는 시켜주겠지만, 그 이상은 절대 기대하지 말 것.” 추상같은 부친의 말씀을 들은 후 냉수장수, 신문팔이를 하며 용돈도 스스로 벌어서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자녀를 키울 때 선을 분명히 그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유롭게 행동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말입니다.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면 집으로 데리고 오게 하여 잘 대접해주었고 거리낌 없이 사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세 딸 모두 자신이 원하는 남편감을 데리고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사위가 모두 중국계인데 한 명은 대만 출신, 한 명은 중국 본토 출신 다른 한 명은 홍콩 출신입니다. 사위와 딸들이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눌 때 중국말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닌 영어만 쓰는 게 불만 아닌 불만이라 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토론토에서 20년 생활을 정리하시고 다음 주 화요일 밴쿠버로 떠나십니다. 다들 살기가 좋다고 말하는 밴쿠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물론 큰딸이 있으니 딸을 보겠다는 희망도 없진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새로운 곳에 살아보겠다는 열망입니다. 선배님은 미국과 캐나다 동부는 충분히 돌아보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제는 밴쿠버에 닿을 내린 후 캐나다 서부와 미국 서부 곳곳을 다녀 보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단 한 주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나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우리를 묶어두기 때문이지요. 삶의 무게 때문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선배님은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짐을 꾸려 바로 실행에 옮겨왔었습니다. 이번에 삶의 거처를 옮기는 일도 실행에 옮기십니다. 육십 대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63세, 62세)에 이런 변화를 시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섬기시는 교회(디모데 장로교회, 토론토)의 시무장로님이시니 오죽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일들조차 자연스레 정리하고 홀연히 떠나고자 하시는 내외분이 존경스럽습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기나긴 여행을 즐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고 있는 집의 클로징이 끝나는 내주 화요일 자동차 편으로 미국 쪽으로 내려가 밴쿠버까지의 긴 여행을 시작하십니다. 그동안 수 차례 밥을 사셨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식사 한 끼 대접도 못 하고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인생 여정 가운데 꼭 필요한 교훈과 지혜를 삶을 통해 보여주신 김홍준 선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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