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설렌다. 도시락 싸서 소풍 갈 때 기분이 그랬다. 토론토에서 한국영화를 보러 가기는 처음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차를 앞으로 뺐다가 뒤로 집어넣었다 하신다. 서너 번 반복해도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지하주차장이 낯설어 그러실 것이다. 길목에서 주차를 끝내시기만 기다리고 서 있다. 슬쩍 바라보시며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요즈음 저런 분이 드문데….’
모처럼 친구분과 만날 약속이라도 하셨을까.
영화관은 주상복합건물에 있다. 지하철로 연결되는 지하층에는 대형식품점이 자리를 잡았고 일 층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주류판매점, 이 층에는 병원과 은행, 식당과 잡화점이 올망졸망하다. 상업용으로는 제일 위, 삼 층이 영화관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까 하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훤하게 뚫린 아래를 내려다본다. 달팽이처럼 꼬인 건물엔 층마다 상점이 빼곡하다. 식품판매장도 보인다. 사과, 오렌지, 딸기, 멜론 등 각종 과일이 색종이를 잘라놓은 듯하다. 푸르고 싱싱한 채소들도 간택을 기다린다. 건물 하나에 시장을 송두리째 옮겨놓았다.
영화관 매장 앞 테이블엔 두세 사람씩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듣고 보니 무척 익숙한 말이다. 매표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도 낯익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대느라 애쓰시던 할아버지 모습도 보인다. 영화관에서 오늘처럼 많은 어르신을 대하기는 처음이다.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환히 켜져 있다. 시계를 보니 시작시각까지 삼십 분이나 남았다. 좌석은 이미 반 이상이나 찼다.
“여기야 여기.”
“알았어 내 그리 갈 게.”
“자네 왔는가?”
“어, 자네도 왔네.”
목소리에 제법 힘이 실려있다. 다른 때 같으면 듣기가 민망했을 터이다. 오늘은 왠지 자연스럽게 들린다.
어깨를 쫙 펴고 극장 안을 둘러보는 어르신도 보인다. 다중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리는 모국어 대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펴지시나 보다. 객석 전체를 한국인이 차지했으니 자랑스럽기도 하시리라. 영어 잘하는 자식들 앞에서 예전엔 한가락 했었노라고 말한 들 들으려 하지 않았고, 믿으려 들지도 않았다. 난데없이 영화 속에서 겪어낸 세월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니 왜 기쁘지 않으실까. 이민생활 45년에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하셨을까.
부산의 부둣가가 비치면서 영화는 시작되었다. 흥남 부두에서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니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서독에 광부로 간 장면이 나오자 할아버지 한 분이 참아온 울음을 봇물처럼 쏟아내신다.
‘흑흑 헉 꺽꺽’
단말마를 터트리신 할아버지는 탄광에서 빵 나눠 먹던 옛 동료를 생각하셨을까. 시체를 닦아내는 간호사 모습도 비친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회한이 배어 있기도 하고 은근한 자긍심도 엿보인다. 비록 이국땅에 있지만 한 때는 역사의 현장에서 한몫을 했다는 떳떳함, 기력은 쇠하였지만 척박한 이민의 땅에서 이만큼이라도 일구어냈다는 자긍심, 자식들 면면을 떠올리면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선연(鮮然)하다.
한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서시는 어르신 등에 눈길이 머문다. 아슴푸레 아버지 모습도 보인다. 국제시장 ‘꽃분이네’는 토론토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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