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첫눈 오늘 날 외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7. 10. 30. 03:32

<첫눈 오는 날/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 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태백산행/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베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귀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이야 열아홉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이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좋은 글>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이다.

 

<삶은 투쟁이며 행진이다/좋은 글>

삶은 시간을 공허하게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행복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삶은 투쟁이며 행진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은 선과 악의 투쟁,

정의와 불의의 투쟁, 자유와 폭압의 투쟁,

협동과 이기주의의 투쟁이다.

 

삶은 인간의 이상적인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전진시킨다. –마치니-

 

<아침 식사/자크 프레베르>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잔에

설탕을 넣었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그이는 잔을 내려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베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말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이는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비옷을 입었지

비가 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가 버렸지

말 한 마디도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 버렸지.

 

<세상은 하나의 학교/좋은 글>

삶의 목적에는 경험과 자유 두 가지가 있다.

가져 본 자만이 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우선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경험의 세계를 겪어야만 한다.

 

당신의 삶은 영혼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해탈에서 끝을 맺는다.

세상이란 하나의 커다란 학교다.

삶의 여정에 있어서 순간순간

많은 것은 체험하면서 배워나간다.

나뿐 일에 대한 경험은 두 번 다시

그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충고해 준다.

 

그리고 당신이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좋은 일들만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깨끗해지고

세상에 대한 집착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모든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완전히 무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당신의 영혼은 큰 자유를 얻게 된다.

아니 바로 그 자체가 큰 자유인 것이다.  

바바하리다스-

 

<능소화/안도현(1961~)>

능소화의 몸이 뜨거운 것은

죽자 사자 부여안고 다리에 다리를 걸쳐 휘감는 게

최대한의 사랑인 줄 알기 때문이다

 

햇빛 속에서도 햇빛을 잡아당기지 않고

이마에 여려 개의 해드 랜턴을 켠 능소화에게

환한 대낮 따위는 없다

동굴의 그림자만 있을 뿐

 

내려놓을 줄 모르는 저 넝쿨의 무한대의 열망 덕분에

여름날 인근 마을 꽃들은 일찍 불을 끄고 잔다

그때 능소화는 몸속의 혀를 꺼내

어머니의 빈 젖을 핥아 먹는다

 

능소화가 입 냄새 슬슬 풍기는 저녁

뼈속에 구멍이 송송 난 적막한 어머니가

아랫도리를 오무리며 말했다

 

애야, 나는 죽은 나무다 죽은 나무여서 나는 제국의

호적(戶籍)에서 지워졌다 나는 자궁이 없다 자궁이 없어

네가 웅크리고 잠잘 방이 없단다

 

< 참고 견뎌내라/러스킨>

어떤 불행이라도 차분히 참고 견뎌내라.

그럼으로써 그 불행을 도리어 행복의 자양분으로 삼아라.

위는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 속에서

영양분이 될 만한 것을 골라서 흡수한다.

불길도 마른 나무를 넣었을 때만

불이 더욱 밝게 타오른다.

만약 당신이 불행 속에 갇혀 있다면

인생이 활활 타오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선별해내도록 하라.

-러스킨-

 

<낙화/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일기/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 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

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출처] 능소화 / 안도현

 

<나뭇잎 사이로/정호승>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모든 적은 한때 친구였다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고요히 칼을 버리고

세상의 거지들은 다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눈물이 햇살이 되겠는가

어떻게 상처가 잎새가 되겠는가

 

​​<고요/이종문(1958~)>

붉은

고추를 먹은

잠자리 한 마리가

억 년 고인돌에 슬그머니 앉는 찰라

바위가 우지끈, 하고

부서질 듯

환한,

고요

 

<쉬운 일과 어려운 일/채근담>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부딪혀보면 어렵다.

그러나 못할 것 같은 일도 일단 시작해놓으면

결국 이루게 된다.

 

쉽다고 얕볼 것이 아니고

어렵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것이 아니다.

쉬운 일도 신중히 하고

어려운 일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채근담-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무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마음속에 기다림이 있으면/신경숙>

가능한 일이든 불가능한 일이든  마음속에 기다림이 있으면 그것에 마음을 붙여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나요? –신경숙-

 

<찬비 내리고/나희덕(1966~)>

- 편지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제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서해/​​이성복(1952~)>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벌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뻘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역경을 대하는 태도/좋은 글>

사람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면

몸이 아픈 줄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부린다.

마찬가지로 덕의 완성을 인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예사로 역경을 견뎌내지만,

정신적 수양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그 역경을 치명적인 불운으로 여긴다.

 

<조심하세요/마더 테레사>

생각을 조심 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 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 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성격이 되니까

 

성격을 조심 하세요

그것은 언젠가 운명이 되니까 -마더 테레사-

 

<고난의 이유/좋은 글>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맹자 ,「告子章句下 15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뻬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앤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은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하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벋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돌 하나, 꽃 한송이/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장화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시련을 견디는 사람/좋은 글>

​​시련을 참고 견디는 사람에게 은총이 있으리라.

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시련을 내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과 비천함으로

재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은가

그것은 부귀로운 사람의 시련이다.

 

스스로 불평 없이 고난의 운명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것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에게 내려진 시련이다.

    _ 탈무드.

 

 

<사평역에서/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담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거절 당연한 것으로 여기세요/정호승>

 소설가를 꿈꾸는 남자가 낮에는 상담사로 일하며, 밤에는 부지런히 글을 썼다. 마침내 그는 기다린 창작의 고통과 글쓰기의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지막 문자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는 출판사 몇 곳에 삼백 페이지 짜리 원고를 보냈다.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리길 며칠 그리고 몇 달. 간절히 기다리던 답신이 날아들었다. "선생님의 원고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편집 방향과 달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정도는 양호한 답변이었다. 그다음 출판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선생님이라면 직업을 바꾸겠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펜을 놓으세요." 거두절미하고 "탈락!"이라는 한마디만 써 보낸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원고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야기가 너무 길고, 등장인물이 많으며, 줄거리에 일관성이 없고, 결말이 뻔합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쌓여 간 거절의 편지가 자그마치 아흔아홉 통. 이쯤 되면 상심하거나 재능이 없다고 포기할 법도 하련만, 그는 거절 편지를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실의에 빠질 작가 지망생을 위해 부끄러운 편지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아흔아홉 통의 거절 편지를 엮은 <소설 거절술>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캐나다 작가 카밀리앵 루아, 그는 수많은 거절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끝에 두 권의 소설을 펴냈다. 그뿐 아니라, 출판사 주소인 줄 알고 잘못 보낸 그의 원고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다. 철물점 주인이 그의 소설을 읽고 흥미를 느껴 난생처음 글을 쓴 것. 철물점 주인은 그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작가님의 원고를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정말 재미있어서 저도 한 번 써 봤는데 한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두 작가님 소설 덕분입니다."

 그는 여전히 무명에 가깝지만 더 이상 거절당하는 데 상처받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랜 열망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싹 틔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래의 꿈/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뽐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깊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기를 한다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

농게 가족이 새 펄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

, 화분에서 분수가 이만큼 자랐는걸

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끼워야겠다

저 아래 물밑을 쏜살같이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해협을

달려봐야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참나무/알프레드 데니슨>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내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나뭇잎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이 되어 서 있는

저 발가벗은 힘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라임라이트> 중에서>  

인생은 아름답다! 살아 있다는 것은 멋지다! 당신은 언제나 자신의 병만 생각하기 때문에 어둡고 우울하다. 그래선 안 된다. 사람에게는 '죽는' 일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살아가는' 일이다! -늙은 악사 칼베로 역을 맡은 채플린이 다리가 마비돼 희망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던 젊은 무용수 테리에게 하는 말이다.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윤준경>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사랑을 하리

머리엔 장미를 꽃고

가슴엔 방울을 달아

잘랑잘랑 울리는 소리

 

너른 들로 가리라

잡초 파아란 들녁을

날개 저어 달리면

바람에 떨리는 방울 소리

 

방울 소리 커져서

마음을 울리고

하늘을 울리고

빠알간 얼굴로 돌아누워도

잘랑잘랑잘랑

잘랑잘랑잘랑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머리엔 장미를 꽃고

가슴엔 방울을 달고

사랑을 하리

 

</안도현>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젓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소네트 89/윌리엄 세익스피어>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아니하며.

사랑을 바꾸고 싶어 그대갸 구실을 만드는 것은

내가 날 욕되게 하는 것보다 절반도 날 욕되게 아니하도다.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대를 위하여서는 나를 대적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은 나 또한 사랑할 수 없나니.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중에서>

"사막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곳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 순간 난 놀랍게도 모래에 쏟아지는 그 신비한 빛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맞아."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든, 별이든, 혹은 사막이든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거야!"


 <빌헬름 슈미트 『나이 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중에서>

나는 자신의 사그라지는 인생에 대한 울분을 피어나는 생명에 분풀이 하는 그런 분노의 노인이 결코 되고 싶지 않다. 노화 방지 대신 노화의 기술, 나이 든다는 것에 맞서 살아가는 대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긍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나이듦의 기술이 필요하다. 자연이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방식은 현대 문명과는 다르다. 자연은 생명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생성해내면서 영원한 젊음의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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