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2. 3. 23:02

 아내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 생각해냈다.

지금의 네가 참 좋아.”

너는 앞으로 잘 될 거야.”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 그런 말들이었다.

 

 어린 시절 철모르던 개구장이였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막대기로 칼싸움을 하고 놀았다.

 더 어렸을 때는 소꿉놀이를 했다. 딸부잣집이었던 윗집에는 순님이 누나와 순교 누나가 있었고 나보다 한 살 적은 점둘이가 있었다. 윗집 누나와 점둘이, 바로 밑의 여동생 미경이와 함께 자주 소꿉놀이를 했다. 남자는 나뿐이어서 자연스럽게 소꿉놀이를 하며 놀지않았나 싶다.

 숨바꼭질도 빠지지 않는 놀이였다. 대구 사과가 유명하던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사과밭이었다. 이웃인 순님이 누나와 순교 누나 집도 과수원이었고 옆집 영주네도 과수원이었다. 그 옆집은 재호네 과수원이었다. 그 넓은 과수원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숨을 곳이 천지였다.

 바람부는 날이면 연날리기를 했다. 연은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는데 대문 앞 공터에서 연을 날릴 때면 내 몸도 같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면 냇가에서 썰매를 탔다. 썰매는 사과를 담을 궤짝을 만드는 널빤지를 이용했다. 앉아서 타는 썰매였는데 양손에 든 작대기로 얼음을 찍어 뒤로 밀면서 앞으로 나갔다. 

 여름이면 매미를 잡으러 다녔다. 긴 작대기에 말총(말 꼬리의 털) 고리를 만들어 달고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맴맴 노래 부르는 매미를 잡곤 했다. 말총으로 만든 고리를 매미 머리 쪽에다 슬그머니 대면 앞발로 살살 만지다 고리에 걸려들어 꼼짝 못하고 잡혔다.

 하늘이 더 파래지는 초가을이면 왕잠자리를 잡는 재미에 빠지곤 하였다. 작대기에 실을 이어 왕잠자리 암컷을 매달고 빙빙 돌리면 수컷이 날아와 달라붙었다. 머리 위로 빠르게 나는 왕잠자리를 잡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놀면서 잡은 벼메뚜기는 도시락 반찬이 되었고 개구리는 양동이 속에서 삶겨져 닭모이가 되기도 했다.

 놀기에 정신이 팔려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놀기만 하고 공부는 언제 할 거냐며 윽박지르곤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다투셨다. 두 분이 다투실 때면 집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냉기가 돌았다. 방 한쪽 구석에 숨어 고성高聲이 잦아들기만 기다렸다. 그때는 정말 지옥이었다.  

 학교에서 시험 점수를 잘못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난감하였다. 부모님께 시험지를 보여드릴 일을 생각하면 덜컹 겁부터 났다. 아버지께 매 맞을 생각에 숨이 막혔다. 어두운 창고에 들어가 사정없이 매를 맞아야 했으니까. 아버지의 매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매 맞은 날이면 엉덩이나 종아리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멍자국은 오래 남았다. 망친 시험지는 가방 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마음 한구석은 늘 걱정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다. 70점 맞은 시험지를 부모님께 가져다드리기가 두려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웃집 처마 밑에 묻었다. 어머니가 왜 시험지를 가져오지 않느냐고 물으실까 전전긍긍하였다. 잘 놀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시험지가 빗물에 젖어버릴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결국엔 실토 하였고 어머니와 함께 이웃집 처마 밑으로 가서 땅을 파고 묻었던 시험지를 찾아야 했다. 이 일은 성인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자주 꿈에 나타나곤 했다. 오십 중반이 될 때까지도 숨겨둔 시험지 때문에 매맞을 걱정을 하며 가슴 졸이는 꿈을 꾸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자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참 괜찮은 아이야."

그래도 괜찮아.”

너 참 똑똑하게 생겼네.”

너는 앞으로 잘 살 거야, 걱정하지 마.”

공부? 그래,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돼."

 

 이렇게 말하며 꼭 껴앉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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