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오크리지즈 트레일(Oak Ridges Trail)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1. 2. 9. 00:05

 2월 들어 첫 번째로 맞는 주일입니다. 온라인으로 주일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마치고 트레킹 코스를 걷기로 하였습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고 환한 햇볕이 눈 쌓인 대지 위로 내려앉습니다. 영하 십 도의 추위지만 검은 마스크가 얼굴을 감싸주어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여유 있게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만 걸음 내외를 걸었다면 오늘은 그 두 배를 걸을 작정입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어릴 적 눈싸움을 하며 뛰놀았던 생각이 납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드물게 눈이 내렸습니다. 곱던 눈은 하루도 못 가 녹아버리곤 하였지요. 이곳 온타리오의 트레킹 코스엔 12월부터 4월까지는 눈이 쌓여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능선을 따라 걸을 때면 칼바람이 뺨을 때립니다. 빵모자를 뒤집어썼지만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합니다. 능선을 지나서 계곡으로 접어들면 추위가 덜합니다. 잎을 떨어트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지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제법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집니다. 매서운 바람이 전봇대보다 높은 가지 끝을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겠지요. 햇살이 눈밭 위로 내려 앉아 눈이 부십니다. 

 온타리오에는 오를 산이 없다고 더러 투덜대기도 하지만, 오크 리지즈 코리도어 트레일 코스에는 능선과 계곡이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 정취를 느낄 수 있지요. 겨울 트레킹의 맛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이 기쁨을 모르고 생을 마감할 뻔했습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 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애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중에서

 

오크 리지즈 웹싸이트: Oak Ridges Corridor Conservation Reserve - Toronto and Region Conservation Authority (TRCA) - https://trca.ca/parks/oak-ridges-corridor-conservation-re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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