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몸통에 매달려 구멍을 내는 딱따구리를 만났다. 먼 거리에서 가지를 쪼아대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지척에서 만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새빨간 고깔모자를 쓴듯하였고 검은색 몸통에 하얀색이 간간이 섞여 있어 생김새가 수려했다. 산비둘기보다는 컸고 까치만 하였다.
십 미터 앞이나 되었을까. 걸음을 멈추고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신이 서 있는 것쯤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방아를 찧었다.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힘껏 내리찍으며 부리로 썩은 나무를 쪼아댔다. 온몸에 힘을 가하여 머리를 흔들다 보니 가냘픈 다리로까지 힘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러다 뇌진탕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 열심히 앞뒤로 머리를 흔들며 나무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이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숲속 이곳저곳에서 나무 쪼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월 중순, 아직 눈은 발목까지 쌓여있지만 봄은 저만치 오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뻗은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걷는 행복, 눈 덮인 겨울숲을 자박자박 걷는 행복, 지척에서 딱따구리를 만나는 행복까지. 걷는 행복 속에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도 있다.
2021년 2월 15일 패밀리데이 아내와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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