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영성강좌 3, 2021년 11월 9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
예수는 광야와 외딴곳, 빈들과 산에 가르치셨다. 갈릴리 호숫가 밀밭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펼쳐보았다.
예수와 피조세계의 관계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보는 것이 관계의 중심입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는 이것들보다 구하지 아니하냐. 새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기르시는 새로 보았다.
-들의 백홥하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여도 그토록 아름답다.
예수님의 꽃과 새와 꽃을 바라보는 눈빛은 매우 의미있다. 면밀히 주의깊게 살펴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들에 있는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꽃을 관상하는 예수님이라 말한다.
창조세께는 하나님의 지혜와 보화가 담긴 스승에 가까왔다.
예수님의 언어는 시적이고 비유적인 언어였다.
땅과 씨앗을 예수님께서는 유심히 보셨고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먄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연의 언어를 쓰셨다.
예수는 시대의 아픔과 함께 아파하며, 생명과 치유이 길이 되는 생태적 예수이다.
예수님이 바라보신 산
예수는 나사렛과 갈랄리,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었다. 그는 광야와 외딴 곳, 빈들과 산에 머물기를 즐겼으며 갈릴리 호숫가와 밀밭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원대한 꿈을 펼쳐보았다. 그분은 회당에서 가르치기도 하셨으나 중요한 가르침들은 산 위에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들녘에서,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참고 마5:1, 13:1, 막 4:1, 6:31-44, 눅9:10-17, 요6:1-13등).
“주변은 아늑하고 아름다워 세계 어디를 가도 여기만큼 절대의 행복을 꿈꾸기에 알맞은 곳은 없다.”
“웃음을 머금은 듯하면서도 이 웅대한 이 자연이 예수가 배운 것 전부였다.”
“자연의 정기와 들의 향기가 넘쳐흘러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꽃을 좋아하여 자신의 가장 매력있는 가르침을 꽃에서 따왔다. 하늘의 새와 바다와 산과 어린 아이들의 유희가 번갈아 그의 설교에 나오곤 하였다.”
“갈릴리의 모든 꿈에 목가족이고 매혹적인 색채를 띠우며, 마음을 사로잡는 듯한 자연은 훨씬 덜 준엄하고, 이를테면 또 그리 야단스럽게 일신록이지 않는 정신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삭막한 곳은 아마도 예루살렘 주변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갈릴리는 녹색으로 뒤덮인, 그늘이 많은 미소 짓는 듯 한 곳이었다. 정녕 아가와 애인의 노래의 나라였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들에는 온갖 빛깔의 꽃이 피어 더 없이 아름다운 융단을 깔아 놓는다.”
“이곳 동물들은 몸집이 작고 무척 온순하다. 미끈하고 활발한 호도새, 풀 위에 앉아도 풀이 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벼운 지빠귀 과의 푸른 새, 길가는 이의 발 밑에 밟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모관달린 제비, 생기 있고 사랑스러운 눈을 가진 개천의 작은 거북, 겁이 조금도 없어서 사람이 아주 가까이와도 가만히 있고 또 사람을 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조촐하고 근엄한 자태의 황새, 세상의 어느 고장에도 산들이 이토록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 있고 또 이토록 높은 사상을 고취하는 곳은 없다. 예수는 특별히 이 산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이 숭고한 생애의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이 산들 위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장 깊은 영감을 받은 것도 이 산들 위에서 일어났다. 또 그가 예언자들과 은밀한 말을 주고 받고, 또 제자들의 눈에 이미 변모해서 나타났던 것도 바로 여기서 일이었다”(르낭 134-135)
‘예수님의 생애’ 1850년대 프랑스 르낭이 썼다. 갈릴리 주변을 묘사하면서… 19세기 중반 말을 타고 다니던 때 르낭은 갈릴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묘사했다.
당신이 사는 곳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라는 경구가 있다.
다섯번째 복음.
성 제롬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다섯 복음이 있다. 네 복음은 책 안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성지라 불리는 그 땅에서 찾을 것이다. 다섯 번쨰 복음서를 읽어라. 그러면 네 복음서의 세계가 너에게 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거니셨던 갈릴리 호수 주변 자연과 환경을 다섯번째 복음이라고 성 제롬은 설명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다양한 피조물들과의 친밀한 유대감을 보이셨고 자연의 순리에 익숙하셨다. 그는 자연세계를 정복하고 통제하도록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창조세계를 향해 감사하고 숙연한 태도를 보이셨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자연은 예수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조태연 교수)
나사렛과 갈릴리를 걸었던 예수의 교실은 자연이었으며, 교과서는 창조세계였다. 창조세계는 예수에게 관상적으로 바라봄(contemplative gaze, 쟌슨의 용어)의 주체로 그는 새와 꽃들을 “오랫동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a long, loving look at the real, 버거하르트가 관상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갈릴리를 걸었던 예수님은 신학적이지도 인간중심적이지도 않았다. 그분은 시냇물, 들판, 태양, 바람과 함께 사랑에 빠지고, 동식물과 친교를 누리며, 나사렛을 걸으셨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
1. 새 포두주는 새부대에(막2:18-22)
2.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4:1-9)
3. 등불과 됫박 비유
4. 스스로 자라는 씨 바유
5. 겨자씨 비유
6. 밀과 가라지 비유
7. 그물 비유
8. 싹트는 무화과 나무 비유(막13:28-32)
9. 파수꾼의 비유(막13:34-36)
10. 도둑의 비유와 청지기 비유(마24:42-51)
11.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 비유(마25:1-13)
12. 달란트 비유(마25:14-30)
13. 양과 염소 비유(마 25:31-46)
14. 그리스도 병든 자들의 의사(막2:17)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 땅에 씨앗을 뿌려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공동번역, 막 4:26-29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만큼 되느니라 막4:30-32).”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
書三讀
책은 반드시 세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닫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 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덩한 독서는 삼독입니다. -신영복-
“뒤집어 놓고만 보아도 창조이다.” McARTHUR’S 지도
왜 지도 이야기를 했을까요? 1402년 지도가 아직도 맞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의 성경해석이 옳고 지금의 성경해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시대에 응답하는 성경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역사적 맥락과 문학적 맥락(저자의 의도, 적용/기대되는 반응, 글의 유형, 주요 관심, 맥락)을 가지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되 현재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성경과 해석: 지도와 독법
지구는
공동의 집
창발적 유기적 우주론
역사적
메타포
성례전적으로 읽어야 한다. 마크 보그: 기독교의 심장
하난님-지구-인간
자연: 가치와 의미 주체
관계: 주체들의 친교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의미는 돌봄과 보호의 청지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글러스 존 홀) 문자적해석보다는 전체적 맥락에서의 해석이 필요하다.
1) 그린 바이블(2008년에 나왔다) the green bible
“성경 안에는 창조세계와 지구의 돌봄에 대한 수 많은 구절이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해보라.
A green bible trail guide를 읽어보라. 카톡방에 올리겠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이현주>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죽어서 흙 될 일 생각 말고
살아서 너는 흙으로 살아라
온갖 썩는 것 더러운 것
말없이 품 열고 받아들여
오래 견디는 참 사랑
모든 것 삭이는 세월에 묻었다가
온갖 좋은 것 토해내어
마침내 열매 맺히도록
다시 말없이 버텨주는 흙으로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오오 거룩한 흙으로 살아라.
어머님 비닐을 세 번쓰시더라. 나는 어머님께 궁상맞게 시리 그러시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옳았다. 전기도 아끼고 물도 아끼고 종이도 아끼고 모든 것을 아끼고 사셨다.
굿라이프 피트니스 패트병을 가진 사람은 나만인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셨다. 나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천국은 들길과 같을 것이다라고 제 글에서 표현한 적이 이있었다. 들길같다는 생각이 옳다고 생각된다. 자연과 나의 합일을 느낀다.
장엄한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 걸으면서 참 행복하다. 나무들, 새들, 새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이소명 목사님 647-674-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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