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봉황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2. 4. 13. 23:32

 작은 자랑거리가 있어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건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주머니는 열라고 하는데 주머니는 닫히고 입만 열리니 큰일이다.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가려 해야 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불쑥 내뱉고 후회하기 일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야만 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입이 근질근질하여 쓸데없는 말을 떠벌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입이 무거워 해야 할 말만 하고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목이 뻣뻣하여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어떻게 하면 더 겸손해질 수 있는 건지.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세워주고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는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불통의 자신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어떻게 하면 더 겸손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는 것,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건 말은 쉬울지 몰라도 이를 생활화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겸손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입에 달고 살면 그래도 조금은 나은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문학적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의 얼굴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 같은 부드러운 얼굴이셨다. 약간은 수줍은 듯 미소 지으시던 선생님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으셨다. 늘 은근하게 말씀하시면서도 정확하게 본인의 의사를 잘 전달하셨다.

 선생님의 아호는 봉황터였다. 나는 선생님 당신께서 봉황이시기에 봉황터로 아명을 지으셨다고 생각하였다. 하루는 선생님께 왜 봉황터로 아호를 지으셨는지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여러 봉황이 앉았다 갈 수 있는 봉황터가 되기 위해 봉황터로 지었노라고 하셨다. 당신 자신이 봉황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변의 봉황이 쉬다갈 수 있는, 언제라도 다녀갈 수 있는 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봉황터라는 아호를 지으셨다는 것이다.

 나는 무릎을 쳤다. 아 선생님이 그토록 여유가 있으신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크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당신께서 하신 말씀은 천둥처럼 크게 들렸고 우레처럼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로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봉황이 되려고만 하였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봉황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자신이 봉황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재미없고 딱딱한가.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봉황이라 생각하면 그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새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새 봄 봉황터가 되어 봉황이 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