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일기

저 좀 도와주세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4. 13. 22:58

<저 좀 도와주세요/한소>

아스팔트 위에
지렁이가 여럿
쓰러져있다

비가 온다고 좋아서
땅 위로 기어 올라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
아스팔트 위에서 숨이 멎어 버린 것이다

얼어붙은 땅 밑에
웅크리며 살다가
봄이 와서 좋다고
비가 와서 좋다고
소리 지르며 땅 위로 올라왔는데

살만한 세상이 드디어 왔다며
환호성 치다가
눈 깜박하는 사이에
길을 잘못 들어
아스팔트 위에서 그만 질식해 버렸다

살아보려고 몸을 최대한 길게 늘어뜨려
밀고 또 밀어보았지만 아스팔트란 놈은
흙처럼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기만 했다

힘을 다 빼버린 탓인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늘어져
널브러져 있다

잠시만요
저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