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대를 잇는 모국어 사랑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4. 10. 31. 21:58

토론토에 이주하여 산 지도 삼십 년이 되었다. 고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하였을 때 딸들은 여덟 살과 다섯 살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한국어 쓰기를 강요했다.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몇 년 동안은 어려움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영어를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걸 더 편하게 여겼다. 교포 자녀들도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내는 집에서 영어를 쓰면 불호령을 내렸다. 밥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아내가 집을 비울 때면 두 딸은 영어로 대화하고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한국어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아내는 출장 레슨이 잦았다. 자녀 둘만 집에 머무를 때가 많았기에 집에서는 한글만 쓴다는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1990년 이전 캐나다로 이주해 온 교포들은 자녀들이 하루빨리 영어를 익혀 학교나 사회에 더 잘 적응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국어를 잊지 않고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부모가 영어를 익혀 집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모는 한국어로 말하고 자녀들은 영어로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가정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였다. 이 원칙은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은 케이 팝, 케이 음식 등 케이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유행처럼 번져간다.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세계인들이 많아졌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젊은 부모들도 어린 자녀에게 영어를 보다는 한글을 가르치려 애쓴다.
가정을 이룬 두 딸도 자녀들에게 모국어 가르치기에 열성이다. 사위와 딸은 집에서 한국어로만 대화를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 손주들은 한국말을 잘 배워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때로는 어린것들이 어떻게 저런 단어를 알게 되었을까 놀라기도 한다. 막 세 돌을 넘긴 손주는 만날 때마다 '할아버지 주말에 뭐 했어?', '할모니 오늘 뭐 했어?'라고 묻는다.
최근 손주들이 유아원(day-care)에 가게 되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통에 문제가 생겼다. 선생님은 영어로 말하고 친구들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알아듣는데 집에서 한국어만 쓴 손주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눈만 멀뚱 거리고 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도 느린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은 한국어 사용을 고집한다. 자신들이 자랄 때 그랬던 것처럼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기를 원칙으로 삼는다.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딸의 결정이 대견스러운 반면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손주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도 있는데 모국어를 잊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지키는 것이기도 하리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훗날 손주들이 자라면 조상들의 언어인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토론토에 살면서 보람 있었던 일 하나를 꼽으라면 시니어대학 참가자를 대상으로 글쓰기 강좌와 문학강좌를 진행한 일을 들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쓰기를 통하여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십 년 이상 진행되고 있는 모국어 글쓰기 교실에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독일에 광부로 가셨다가 토론토에 정착하여 살아오신 분, 독일에 간호사로 가셨던 분, 광복 후 월남하시어 서울에서 사시다가 토론토로 이주하신 분 등 여러분 계셨다.
참가자들은 글이라고는 써 본 적이 없는데 글쓰기 클래스에 들어와도 되는지 물으며 수줍게 들어오신다. 하지만 몇 주간 함께 공부하다 보면 처음과는 다르게 글을 써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매주 한편씩 글쓰기 숙제를 내어드리는데 써 온 글을 보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이 대부분이다. 쓴 글을 급우들과 함께 읽으며 삶을 알아가고 생각을 공유한다. 글을 통하여 삶과 생각을 공유하니 함께 하는 급우들과 친밀해지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모국어로 된 수필이나 시를 함께 읽고 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보며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을 대할 때마다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글쓰기 반에서 십 년을 함께 하신 고승만 선생님은 단골로 참석한 학생이셨다. 96세가 될 때까지 글쓰기 반에 고정으로 출석하셨는데 팬데믹 기간 중 101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어떤 분은 독일 탄광에서 일하실 때의 경험을 표현하기도 하셨고 다른 분은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실 때의 경험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수필로, 시로 표현하기도 하셨다.
지난 10월 2024년 가을학기 본 시니어 대학 발표회 시간에 90세이신 이순섭 선생님이 자작시 '낙엽'을  낭독하셨다. 낭독 전 글쓰기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실 때 코끝이 찡해졌다. 고국을 떠나와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함께 모국어로 쓰인 문학작품을 읽고 나누며,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음은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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