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믿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매진할 때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렸다. 호랑이를 그리려 애써야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칠십이 코 앞인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목적 지향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사는 건 무척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한편 평안한 삶, 관조하는 삶, 휴식이 있는 삶,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삶의 중요함도 더 깊이 인식하게 된다.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지 관조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와 관조할 줄 아는 눈을 지닐 수 있으리라. Work and Life Balance(일과 휴식, 일과 여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다.
‘관조하는 삶’의 저자 한병철 씨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멈춤의 시간,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되새김질을 위하여 본문의 일부를 옮겨둔다.
<우리는 신성한 쉼, 축제의 쉼을, “삶의 강렬함과 관조를 통합하는 쉼, 심지어 삶의 강렬함이 분방함으로 심화하여지는, 삶의 강렬한 힘과 관조를 통합하는 쉼”을 더는 알지 못한다.
무위가 인간적인 것을 이룬다. 망설임이나 멈춤의 시간이 없으면 행위는 맹목적인 능동자 반응으로 전락한다. 침묵은 말을 심화한다. 고요가 없으면 음악은 없고 단지 소음과 잡음만 있다. 놀이는 아름다움의 정수다. 지각과 반응의 패턴, 욕구와 충족의 패턴 문제와 해답의 패턴, 목표와 행위의 패턴만이 지배할 경우, 삶은 생존으로, 발가벗은 동물적 삶으로 쪼그라든다. 삶은 무위에서 비로소 찬란함을 획득한다.
행위는 역사를 이루는데 필수적이지만 문화를 짓는 힘은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축제가, 무기가 아니라 장신구가 문화의 기원이다.
참된 행복은 목적도 없고 효용 없는 것 덕분에, 고의로 장황한 것 덕분에, 비생산적인 것, 에둘러 가는 것, 괘도를 벗어나는 것, 남아도는 것, 아무것에도 유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종사하지 않는 아름다운 형식들과 몸짓들 덕분에 있다. 느긋한 산책은 곧장 걸어가거나 달려가기 행진하기와 비교할 때 호화롭다.
무위는 발터 벤냐민이 말하는 산책자의 특징이다. “산책자의 특유한 망설임, 움직임이 없이 관조하는 사람의 고유한 상태가 기다림이듯이, 의심은 산책자의 고유한 상태인 듯하다. 실러가 한 비가에는 ‘나비의 의심하는 날개’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다림도 의심도 무의의 모습이다. 의심의 순간이 없으면 인간의 행보는 행진에 가까워진다. 나비의 날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걸음은 망설임에서 우아함을 얻는다,. 결연함이나 서두름은 인간의 걸음에서 우아함을 깡그리 앗아간다. 산책자는 행위하지 않는 능력을 사용한다. 그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 의도 없이 자신을 공간에 내어준다. 그에게 눈짓하는 공간에 내어주고 “다음 길모퉁이가, 안개에 싸인 먼 광장이, 앞으로 성큼성큼 걷는 여자의 등이 발휘하는 자력에” 내어준다.
모든 것이 단기적이고, 호흡이 짧고, 근시안적으로 되어버린 이 서두름의 시대에 무위는 희귀하다. 오늘날 모든 곳에서 관철되는 것은 소비적인 삶꼴이다. 그 삶꼴 안에서 우리는 모든 욕구를 즉각 충족시킨다, 우리는 기다릴 끈기가 없다. 그 끈기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익어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경험은 옅어져 체험이 된다. 느낌은 빈곤해져 감정이나 흥분이 된다. 우리는 오로지 관조적인 주의(물댈注,뜻意) 앞에서만 열리는 실재에 접근하지 못한다. >
–한병철 저 ‘관조하는 삶(김영사 刊)’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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