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삽니니다.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분노나 슬픈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가벼워서는 안 되며 분노나 슬픔을 나타내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분노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분노나 슬픔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지요. 때로는 폭발하기까지 합니다. 대개는 편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아내나 자녀가 희생양이 되지요.
가족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경우 마음에 쌓인 분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 열등감, 남으로부터 무시당하여 찢어진 마음, 이런 마음들이 어딘가 숨어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지요.
한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 토론토로 왔을 때의 일입니다. 둘째 아이가 가끔 늦잠을 잤습니다. 늦게 일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열두 시까지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12학년,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삼 학년에 있는 아이가 늦잠을 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여 밤늦게야 일을 끝냈습니다. 이런 생활이 몸에 배어서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삼 학년인 아이가 그렇게 게으를 수 있느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부지런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너는 집안의 전통을 깨고 있구나.”, “도대체 그래가지고 원하는 대학을 가기나 하겠느냐.”
당연히 목소리의 톤도 높았을 것입니다. 고함을 질렀다는 표현이 옳겠지요.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울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십 분 이상을 다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인 제가 쿨쿨 잠자고 있던 때 딸아이는 학교에 제출할 프로젝트 준비로 이틀간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전날 완성된 결과물을 제출한 후 편안히 늦잠을 잤던 것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후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야단을 치기 전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알아볼 걸 그랬다는 생각에 가슴을 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 제 자신의 삶이 상당히 불만스럽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모, 형제, 친구를 떠나 캐나다로 왔는데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아픔까지 투사하여 딸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큰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운전학원에 등록하였으나 시기를 놓쳐 수강료만 버리고 안타까워하던 때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딸은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차선을 바꿀 때는 백미러로만 확인하지 말고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차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차선을 바꿀 땐 꼭 고개를 돌려 확인하라 그랬잖아.” 불같이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에 질세라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줄 알아.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걸 어떡해.”라고 하며 딸도 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버릇없이 군다는 생각에 더 크게 고함쳤습니다. “뭐라고? 배우겠다는 사람이 하라면 할 것이지 뭔 군말이 그렇게 많아.” 딸의 두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렸습니다. 차에서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아이를 내려주고 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빠란 작자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오래전 자신이 운전을 배울 적 생각도 났습니다. 말 같이 쉽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빠가 잘못했다, 딸이 아빠보다 힘이 없다는 생각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마.’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편지를 읽었을 때쯤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울기만 했습니다.
다행한 것은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딸과 크게 다투어 본 일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딸과의 사이도 더욱 친밀해졌습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건 잘못이었지만 진지하게 뉘우치고 편지로 사과한 건 그나마 잘한 일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고 세상 걱정 없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처와 그림자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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