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re·Vision·Dream

가정주식회사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3. 9. 4. 09:47
텃밭에서 가꾸어 먹던 야채를 시장에서 사고, 베를 사다가 지어입던 옷을 양장점에 포기한다. 집 수리는 목수에게, 머리는 미장원에 맡기고 취사 설거지 빨래 청소는 전자기기나 가정부 몫이다. 아이들 교육은 과외선생에게 포기하고…

한국 가정의 현대화는 보다 많은 살림을 가정 밖으로 포기하는 과정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그렇게 해서 늘어나는 여가를 현명하고 건설적으로 이용할 방책을 모르고 또 아무도 제시해주지 않아 자살과도 직결되는 여가 신드롬에 감염돼 가고 있다. 국회를 통화한 주 5일근무제가 실시되면 어떻게 활용할지 난감한 여가 신드롬은 심각한 사회병리로 저변화 될 것이 자명하다.

이를 사전에 막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가장주식회사’를 들 수 있다. 시카고 학파의 베커 교수는 21세기에 인간은 방대한 자유시간을 갖게 될 것이요. 자유시간 쓰는 법을 배우지 않고는 실업자 아닌 실락자 (失樂者)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 했다. 가정주식회사의 도래를 예언한 스콧 번즈는 실락자로 하여금 즐겁게 살게 하는 방법이 가정 밖으로 포기했던 가사들을 되찾아 누리는 것이라 했다. 곧 화폐만이 경제지표였던 시대는 끝난다는 것이다. 야채도 가꾸어 먹고 요리도 취향대로 손수 하며 의자 책상 가구도 전동공구로 직접 만들뿐더러 옷도 스스로 짓고 머리도 내가 하며 아이들도 집에서 내가 가르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생산재는 기업이 소유하고 가정은 기업이 공급하는 것을 소비하는 장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가정이 생산재 창출의 현장이요, 앞으로 가내 노동이 많아지는 가정주식회사가 될 것이다. 기업은 반제품을 가정에 공급하는 하도급업일 뿐이고…

당장 여가가 생기면 외식이나 쇼핑, 여행 등에 쓰지만 돈이 많이 들어 갈등과 파탄이 반드시 따른다. 가정의 생산기능을 되찾는 일은 현대가정의 붕괴를 저지할 뿐 아니라 멀어지게 돼 있는 부부 부자 모자 형제자매 간의 거리 단축, 지출가계에만 참여했던 아이들의 수입가계에의 참여,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가족의 단란, 쓰러진 부권의 정립과 자녀들의 지육(智育)외에 덕육(德育) 효과도 부가 될 것이 뻔하다.

늘어난 여가의 돈 들이지 않는 이용방법은 온 가족이 수입 가계에 참여하는 가정주식회사를 설립하는 일이다.

이상은 2003년 9월 3일자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가정주식회사’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공감하는 바가 있어 올려놓는다.


'Desire·Vision·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  (0) 2004.05.28
가지치기를 보며  (0) 2004.05.24
긍정적 생각이 경쟁력이다  (0) 2003.09.04
근무시간과 근무강도  (0) 2003.09.03
조직을 살리는 리더  (0) 2003.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