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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에서 만난 노루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5. 24. 10:52
 

주말마다 시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휴일 아침 늦잠을 자거나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빈둥거리기 보다 산책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산책코스는 대구시 수성구의 작은 뒷동산. 크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한시간 가량 산책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수성구는 대구시의 중고등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가 많은 지역으로 강남의 8학군과도 같은 곳이다. 또한 주변에 월드컵경기장 같은 공원이 있고, 높고 낮은 산이 많아 공기가 맑고 또 멀지 않은 곳에 금호강이 있어 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동네이다.

 

영남공업고등학교 뒤쪽 계곡 길을 시작으로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책 길을 나섰다. 막 올라가려는데 제법 크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보통의 낙엽 밟는 소리가 아닌 뭔가 다른 소리(낙엽을 휩쓸고 내려오는 것 같은)에 약간은 긴장을 하며 지켜보았더니 바로 눈 앞에서 뭔가가 하고 지나간다. 노루다. 커다란 노루 한 마리가 내리막을 뛰어 내려와   금새 오르막을 줄달음쳐 사라져 간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하다.

 

 아직은 이른 봄인지라 가지만이 앙상한 나무와 관목 사이로 껑충껑충 뛰어가는 노루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빠르기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다. TV에서 가끔씩 보긴 했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그것도 바로 눈 앞에서 노루를 보다니! 그 신비함에 전율을 느낄 정도이다. 대구 수성구 뒷산에도 저런 노루가 뛰어 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약 10년쯤 전에 뉴욕 롱 아일런드에 머무르며 MBA공부를 할 때 밤 11시경 도서관을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노루를 본적이 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데 바로 코 앞에서  어미노루 한 마리와 새끼 노루 두 마리가 유유히 길을 건너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의 노루를 본적은 없었다.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닌 내 나라에서 그것도 집 근처 산책 길에 노루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이리라. 노루가 지나간지 한 30초나 되었을까 큰 개 한 마리가 바스락 거리며 산을 내려와 노루가 지나간 길을 똑 같이 달린다. 냄새를 맞으며 무언가 찾는 듯한 모습으로 보아 노루를 쫓고 있나 보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달려가는 노루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아쉬움이 이만 저만 아니다. 제발 누군가 총을 들고 노루를 쫓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뛰어 다닐 공간이 많은 것도 아닐 터인데 노루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제발 사람들이 놓은 덫에 걸리지나 말아야 할 터인데, 혹 길을 잘못 들어 도로로 내려가 지나가는 차에 치이지나 말아야 할 터인데 염려하는 마음으로 산책을 계속했다. (사실 뉴욕의 롱 아일런드의 경우 도로 곳곳마다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이니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라는 표지판이 곳곳마다 표시되어있다. 이것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 전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책을 하는 한시간 동안 요즈음 보기가 쉽지 않은 노고지리를 비롯한 온갖 새들을 보았다. 그 중에는 머리는 검은색이요 몸통은 붉은색 힌색 검은 색이고 꼬리는 비교적 짧은 외형을 하고 나무에 매달려 부리로 나무를 계속 찍어대며 위로 올라가는 아름 다운 새도 있었다. 딱따구리다.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리고 참새, 까치들이 뛰노는 모습도 보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책을 마치고 산을 막 내려오려는데 여느 새소리와는 다른 좀 큰 소리의 새 울음소리가 들려 자세히 바라보니 장끼 한 마리가 조심스레 숲속에 내려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어릴 때 자랐던 과수원에서 꿩을 본 기억이 있지만 이 후에는 꿩을 본 기억이 많지 않다.(경기도 였던가 제주도 였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골프장에서인가 한 두 번 본 적은 있다) 내가 숨쉬며 살아가는 동네에서 꿩을 볼 수 있다는 일 또한 행운이 아닐까.

 

내 나라, 내 고장의 자연이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다. 조금 부지런해지니 아름다운 자연도 즐기고, 몸에 좋은 운동도 할 수 있다. 오래도록 건강한 몸으로 자연을 즐기며 산짐승의 뛰노는 모습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싶다.

<2004/3/14 아침산책을 하며-자연보호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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