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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찾은 교정-체육대회참가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5. 24. 11:08
 

지난 일요일(2004년 4월 25일) 졸업 후 처음으로 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지 35년이 되었으니 꼭 35년 만에 학교를 다시 찾은 샘입니다. 35-41년 전 뛰어 놀던 그 운동장은 흐른 세월 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지만 그다지 생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이나 학교 모습은 비슷하다는 이유와 어렸을 적 6년간의 짧지 않은 세월동안 철없이 뛰어 놀던 고향 모습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들 모습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언뜻 보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가끔씩 만나거나, 전화로 통화를 하는 친구들-카톨릭의대 비뇨기과 과장 박재신, 역시 카톨릭 의대 약리과 교수인 양재호(재신은 고등학교까지 같은 교회를 다녔으며, 재호는 바로 이웃에서 살았음),현재 동기회 회장을 맞고 있는 이재성,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박준석, 한 마을에서 자란 두용택-그리고 서울서 함께 내려간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2년 전 지하철 참사로 돌아가신 영만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 얼굴을 잠시나마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서먹할 뻔했습니다. 여자 동창생들의 모습은 더했지요.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사람 한 사람이 있었을 뿐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는 사람은 아주 없었습니다. 술을 몇잔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구들의 옛 모습이 하나 둘 기억이 나더군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반야월 이란 곳으로, 대구 근교의 과수원이 많았던 시골동네 였습니다. 지금은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 아파트단지도 들어서고 새로운 도로도 뚫렸지만 제가 학교에 처음 입학할 40년 전에는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공기도 맑고 물이 맑은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앞으론 금호강이 흐르고 뒤로는 팔공산 자락 초례봉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지요.

 

반야월(혹은 안심이라고도 함)이라는 지명은 서기 927년 고려태조 왕건이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여 견훤에게 크게 패하여 간신히 몸을 피한 후 한숨을 돌리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반달이 떠있었다고 하여 생겨났다고 하지요. 이 지역이 안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이유도 태조 왕건이 이곳에 와서야 안심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공산전투라고 알려진 이 전투에서 장군 김락과 신숭겸이 죽고 많은 군사가 전사 하였음, 이는 태조왕건이라는 TV사극을 통하여 소개된 적도 있음)

 

친구들을 만났다는 반가움 외 또 다른 기쁨은 학교운동장에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40년 전에도 아주아주 크게 느껴졌던 그 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쉬기도 했고, 나무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합도 하고, 나무 옆에 있던 축구 골대로 공을 차 넣기도 했었습니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는 튼튼함으로 학교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도 든든했지요.  나무 아래 가만히 서있으려니 어릴 때 조그마하고 뽀얀 얼굴의 너가 다시 나를 찾아왔구나, 나는 너를 기억하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를 바라 보며 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얼굴에 주름도 생기도, 이마도 벗어지고, 목소리도 변했지만 나무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후배들이 자라고 뛰노는 모습을 지켜볼 터이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아래 땀을 식힐 수 있는 그늘이 되어지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혼자서 천천히 학교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예전에 있던 교사는 많이 헐리고 새로운 교사가 들어섰고 교사 사이의 우물 옆에 있던 은행나무는 푸른 잎을 드리워 제법 큰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어요. 운동장 남쪽으로는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외로이 서있었지요. 어릴 적 운동회를 하면 소나무 뒤쪽으로 학생들이 앉아 열심히 응원을 했고,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진 선수들이 보무도 당당하게(귀여운 보무) 입장을 할 때 기준을 삼게 해주었던 소나무였습니다. 오랜 풍상에도 잘 견뎌 온 것처럼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아 남아 후배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 줌은 물론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친구와 자연과 추억은 오래도록 변함없이 곁에 남아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만 조용히 어루만져 준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2004년 4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내가 다닌 반야월초등학교가 말입니다.

<200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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